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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그래 나도 내 길을 계속 가야지 l 전문번역가 윤종석

어느날 책꽂이를 문득 훑어 보았는데 책들의 제목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윤종석 옮김’. 내가 감명 깊게 읽고 영향을 받은 상당수의 기독교 서적에 그 이름 석자가 줄곧 있었다. 호기심에 검색을 해보니 전문번역가 윤종석 선생의 손길을 거친 책의 목록은 내 청년의 날에 영향을 준 책들의 목록과 거의 일치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필립얀시, <하나님의 모략>달라스 윌라드, <예수님처럼>맥스 루케이도, <하나님의 임재연습>로렌스수사 등 굵직한 베스트셀러 기독교서적들을 중심으로 최근에는 <메시지>유진 피터슨까지. 전문번역가 1세대로 알려진 윤종석 선생에 대한 호기심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글 이재윤


이재윤(이하‘이’) : 한국 기독교인이라면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책을 한두 권쯤은 읽어 보았을 듯합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번역가로서 선생님의 골수팬도 있더군요. 요즘은 어떤 책을 번역하고 계신지요?

윤종석(이하‘윤’) : 도서출판‘ 두란노’에서 의뢰받은 래리 크랩의 교회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맨 처음 번역한 단행본이 래리 크랩의 <결혼건축가>1990였습니다. 그때도 래리 크랩은 저에게는 큰 나무였지만 얼추 20년이 지난 지금, 그 나무에 헤아릴 수 없이 둘린 나이테와 그 테 하나하나에 촘촘히 녹아든 신산이 제 모습을 비추어주며 숙연하게 하네요.

: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곳에서 선생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왠지 제 상상으로는 한적하고 여유 있는 전원마을에서 커피를 한잔하시면서 책을 읽고 계시는 모습이 상상됩니다만.
: 제가 10년째 살고 있는 이곳은 눈이 오지 않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곳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아서 적응하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고드름 낙수에 수채의 두꺼운 얼음장이 속에서부터 천천히 녹아나가던 이른 봄이나, 아주 멀리서 왔을 것 같은 바람이 빛바랜 나뭇잎보다 내 마음부터 떨리게 하던 초가을 같은 때면 제 속에 환상통(잘려나간 지체에 감각이 느껴진다는)을 앓곤 했습니다. 바깥에는 없는 계절들이 제 안에서는 에누리 없이자신의 주기를 다 훑고 지나가는 거지요. 그런데 이제 그것마저도 세월의 흐름에서 무디어지나 봅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특별새벽부흥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원래 아침잠이 많아 그런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초등학생 딸이 가고싶다고 해서 두 해째 운전기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녀오면 6시 반쯤에 아들을 고등학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보통 오후 6시까지 작업을 하지만 정작 일을 하는 시간은 여섯 시간 정도인것 같습니다. 몸이 굳어지지 않도록 운동도 해야지요. 오전에는 가볍게 몸을 풀고 오후에는 밖에 나가 자전거를 탑니다. 물론 일정대로 잘 할 때의 얘기지요. 점심 먹고 나서 책상에 엎드려 잠깐 자는 낮잠이 꿀맛입니다.


: 지금까지 번역하신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소중히 여겨지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인지요
: 제일 초기에 번역한 <결혼 건축가>와 <거짓의 사람들>1991입니다. 단행본으로는 데뷔작 격이라서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었고, 그만큼 마지막 한 글자 한 문장까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번역한 책 수가 꽤 많아졌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아도 그 두 책을 제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으로 저를 깊이 만져준 책들은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꼽지를 못하겠네요. 필립 얀시, 달라스 윌라드, 게리 토마스… 특히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1998를 접했을 때의 그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던 그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 전문번역가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번역하는 일을 시작
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전문번역가라는 직업은 저에게 분명히 큰 축복이지만 그 속에 시린 아픔을 배태하고 있습니다. 제가 6년간의 고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예정에 없이 미국에 눌러앉게 되었을때, 제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결국 유학 오기 전에 하고 있던 번역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을 때 그 허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뭐 하냐는 질문에 집에서 번역한다고 하면(전문번역가를 구어로 말하면 그거죠) 다들 나를 어정쩡하게 되다 만 사람처럼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심지어 심방 오신 목사도“ 속히 직접 책을 쓰게 하소서”라고“ 축복” 기도해 주시더군요(웃음). 한국에서 좋은 대학들 나오고도 이민 와서 전혀 딴 일 하시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더군요. 게다가 전문번역가라고 말하면 꽤나 거창한 것 같지만 이건 돈이 안 되는 직업입니다. 당시에는 몇 년 동안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으로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모든 꿈을 접고 번역가라는 나를 받아들이는 데 그런 대가가 따랐던 겁니다. 그런 점들만 빼고 본다면, 세상에서 저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번역이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라고 할까요. 제가 유학 생활을 하는 내내 학비의 충실한 공급원이 되어주기도 했고요. 전업 12년을 포함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지금까지 한번도 손에서 번역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 매력이 많은 직업이지요! 그중에서 제가 정말 원없이 즐기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프리랜서라는 말 그대로 자유입니다. 조직, 관계, 잡무, 시간, 모든 면에서 누리는 이 자유. 특히 저는 기성의 틀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어설픈 기질이 있거든요. 여름이면 가족들과 함께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평소에도 아이들의 삶과 각종 행사와 일들(운전기사를 포함하여)에 전적으로 함께할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요. 이런 거라도 없으면 번역 일 못하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저에게 번역 일의 최고의 매력은 제가 가장 즐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다 먼 길을 돌아왔는데 와보니 집이었다고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저는 충분히행복합니다.

: 많은 책을 번역하다 보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접하셨을 것 같습니
다. 그런 책들 중에 서로 상충되는 주장을 다룬 책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다원화시대에 기독교 스펙트럼 안에서도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작가와 이야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혼란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그러한 다양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독교 출판의 책임과 정체성이라는 면에서도 같이 말씀해주시기 부탁합니다.
: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우리 집 꽃밭에 해당화와 매화가 함께 있었습니다. 두 나무의 꽃은 어쩌면 그렇게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지요! 그 두나무를 양쪽 끝에 두고 그 사이로 갖가지 나무와 화초가 올망졸망 철따라 저의 눈과 상상을 자극해 주었죠. 함께 있기에 각자가 더 아름다워지는 원리를 생각하면 저는 그 꽃밭이 떠오릅니다. 저는 다양성을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그래야만 ‘나’도존재할 수 있는 거고요. 누군가는 그 다양한 것들의 하나에서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우려하는 것도 있습니다. 종종 사탕류의 책들(제 생각에)이 주식처럼 소비되는 현상입니다. 건강식은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게 사탕이지만 사탕이 쌀이나 채소보다 더 많이 팔리는 것은 문제이겠지요. 이 부분에서 출판인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출판도 어쩔 수 없이 사업이므로 독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결국은 좋은 독자가 좋은 책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저는 한국 교계 독자들의 높은 독서 수준을 종종 확인하며 도전도 받습니다.

: 마지막으로 <오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말주변이 없는 편인데 글을 통해 좀 자분자분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돌아서서 제 삶의 여정을 되짚어본다 생각하고 저 자신에게 답하는 심정으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제 이야기가“ 그래 나도 내 길을 계속 가야지” 하고 힘이 나게 해준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