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과거 이 노래가 들려올 때면 누구나 한껏 같은 꿈을 꾸며 흥얼거렸던 노래다. 그런데 요즘같이 잿빛 콘크리트 아파트 문화에 찌든 이들에게도 동일한 기능을 하는 노래일지 모르겠다. 1970년 후반으로 기억한다. 넓고, 늘 푸른 초원에서 천사 같은 삶을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을 보며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꿈꾸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친구들한테서 꿈 깨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미국에도 그렇게 행복하기만한 초원의 집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저 미국인들의 꿈을 그린 말 그대로 드라마였다. 더욱이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푸른 대 초원이 펼쳐진 집과 넓은 공간의 대형 건축물은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다. 오히려 우리는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 유럽과 일본에서 지혜를 빌려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큰 집, 큰 차 같이 큰 것만 좋은 것이라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고, 판단하게 하는 그런 규모의 경제와 문화가 우리 삶의 유일한 모델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만족되지 않는 욕망이며,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허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적합한 공간을 창출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공간 문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잘 맞아야 한다. 그리넓지 않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그 자유를 누리고자 넓은 공간을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공간은 절대 부족하다. 절대 부족의 상황에서 모든 이가 만족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마 이러한 현실 인식이 요즈음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한 열망을 불러오는지도 모르겠다. 정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사회구성원들의 커져가는 욕망과 그 욕망에 만족을 줄 수 없는 현실적 한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정의는 결코 법적인 차원에서 만족될 수 없으며, 사회 구성원 개인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윤리
적인 차원을 요구한다.

윤리가 율법주의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자발적 동참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 부족과 자유를 펼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추구하는 욕망의 조화를 위한 정의는 나눔을 향한 자발적 동참과 동반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물론 대한민국은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자발적인 나눔과 지혜로운 나눔을 통한 공간 나눔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줄 것이다. 자발적 공간 나눔의 중심에 교회가 자리하면 좋겠다. 공간 나눔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과 이웃과 함께 넉넉함으로 즐거웠으면 좋겠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이 늘어가게 되면 지역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다.
신앙인들과 교회가 바로 이러한 지역 공동체 형성의 중심이 되기를 소망한다!   발행인 임성빈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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