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르고
허기지고
가난해도
꺾여져 잠시 잊혀져도
그래도 난 여전히 난 여전히
난 여전히 꽃이다
- 김도현 / <애가> 중

‘아름다움’의 뜻은 무엇일까. 박상륭 선생에 의하면,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이고, 신영복 선생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알음다움’이다. 두 선생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합하여보면, 아름다운 사람이란 ‘고통을 앓아내고, 고통의 뜻을 알아낸 사람’이라고 말해볼 수 있겠다. 암을 오롯이 앓고 있는 사람, 아픔과 슬픔을 묵묵히 견디고 기어이 그 속에서 웃음과 희망을 알아내고야 마는 사람, 참 아름다운 사람, 조수진 씨를 만났다. 글 이호은


조수진 씨는 5년이란 세월을 암에 시달렸지만 조금도 시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뭐랄까, 말 그대로 ‘소녀’ 같았다. ‘소녀’ 같은 서른두 살, 암 환자라니. 2AM의 열혈 팬인 그는 조권 군이 이번에 낸 만화책, <오방떡소녀의 행복한 날들>에 추천사를 써준 이야기와 창민 군이 책을 읽고 페이스북에 인증 샷을 올린 이야기를 하면서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정말, 영락없는 ‘소녀’다.


사실 이 소녀는 ‘엄친딸-엄마 친구의 딸을 일컫는 유행어-’중에서도 ‘엄친딸’이었다. 대전과학고 졸업, 서울대 수석졸업, 삼성 입사. 귀여운 외모와 상냥한 성격뿐만 아니라 탁월한 능력까지, 도대체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늘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암이 닥쳐왔다. 림프선암 3기 진단을 받았던 것은 2005년, 27살의 나이로 부푼 꿈을 안고 회사에 다니고 있던 때였다. 굳게 마음을 다잡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만 치료를 받으면 당연히 완치될 줄 알았다. 하지만 2006년, 암은 재발하고 말았다. 그것은 소위 ‘말기 암 환자’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조수진 씨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정말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아버지가 ‘하나님이 크게 쓰시려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막 대들었어요. 그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야, 하면서요.”
다시 시작한 항암치료에 일주일 만에 빠진 몸무게가 7kg. 온갖 약물을 투여 받으며 시체처럼 꼼짝없이 누워 있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래서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했다. 의사들은 그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조수진 씨는 죽은 채로 사느니, 차라리 살다가 죽겠다고 결정했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으니까, 숨이 붙어있으니까 계속해서 살아야 하잖아요.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 요양원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몸이 조금씩 회복되어 시한부를 훌쩍 넘기면서, 내 안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처음 진단 받을 때와 다르게, 재발하고 나서부터는 정말로 하나님만 의지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약해졌던 때였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새로운 삶의 장이 열렸던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 2년이란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 버렸던 시점이었죠. 이제 뭔가를 나누고 싶고,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소통하고 싶었는데 글로는 풀어내기가 힘들어서‘만화’라는 수단을 선택했지요.” 맨 처음에 그렸던 것이 <암이래>라는 만화였다. “환자가 되면 다른 사람의 말을 비뚤게 듣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비뚤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때의 억울한 심정, 답답한 마음을 만화에 담았어요. 그 첫 번째 만화를 완성하고서 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다 이루었다면서.”
조수진 씨는 사실상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있었던 것은 80% 언니 덕분이라고 고백한다. “언니가 ‘넌 그릴 수 있어. 이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야’라고 계속해서 격려해 주었어요.” 그리고 언니의 제안에 따라 ‘암싸사-암과 싸우는 사람들, cafe.daum.net/cancer94’란 온라인 커뮤니티에 만화를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만화를 읽은 사람들이 위로를 얻었다며 댓글을 달기 시작하면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꿈도 다시금 찾았다.“ 초등학교 시절의 꿈이 만화가였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잘하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웃음) 그 꿈을 접었거든요.
그런데 이
제 다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예요.”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동그란 오방떡하고 똑같이 생겼다는 말에 영감을 받아서 ‘오방떡소녀’라는 캐릭터도 만들었다. 이후에 출판사와 연결되어 계속해서 만화를 그렸고, <암은 암, 청춘은 청
춘>, 그 속편인 <오방떡소녀의 행복한 날들>을 펴냈다.
조수진 씨는 <오방떡소녀의 행복한 날들>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휠체어 농구의 세계를 그린 <리얼>이라는 만화의 한 부분을 인용했다. 골육종으로 다리를 잘라내고 절망에 빠져있는 중학생 주인공에게, 희귀병에 걸려 스무 살쯤이면 죽게 될 친구는이렇게 말한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 앞으로 몇 분 후면 끝나겠지, 또 몇 분 후면 끝나겠지, 하고 남은 시간이 얼마쯤 될까만 생각하면서 탄다면 과연 롤러코스터를 즐길 수 있을까. 내 인생이 얼마가 남았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살아있는 동안에 이 삶을 즐기면 돼.” 조수진 씨는 만화를 통해서 ‘ 암 환자도 사람이다. 암 환자도 삶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제가 암에서 나아야만 다시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저는 지금도 이미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아까울 만큼 소중한 이 순간순간들을 즐기고 있고, 감사하고 있고, 음미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그려진 오방떡소녀 이야기는 암 환자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했으나 받지 못했던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책을 읽은 독자가 처음으로 제 블로그에 와서 글을 남기셨는데, 그분은 난소암으로 투병하고 있었죠. 제 책을 읽으면서 한참 울고 웃으면서 큰 위로를 얻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만화를 그리면서 정말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때 만화를 그리길 잘했구나, 보람을 느꼈어요.”
안타깝게도 조수진 씨의 암 투병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조수진 씨의 인생도, 사랑도, 작품도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제가 자가골수이식 수술을 하면서 좋은 인턴 선생님 한 분을 만났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분이 제 남자친구가 되었고요. <이곳에도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암 투병을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을 키워나가는 러브스토리를 풀어보려고 해요.”
이해인 수녀는 암 투병 중에 쓴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그리 친숙하게 여겨지지 않던 희망이란 단어가 퍽 새롭게 다가오는 날들입니다.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만 오는 것임을,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임을, 바로 곁에 있어도 살짝 깨워야만 신나게 일어나 달려오는 것임을 다시 배워가는 날들입니다.” 꽃이, 비바람에 찢기고 꺾여도 여전히 꽃이듯, 조수진 씨는암 투병을 하며 아프고 상해도 여전히 사람이다. 오늘도 살아있는 사람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독한 불안에도, 지난한 고통에도 희망을 고집하고, 사랑을 고집하는 사람이다. 오늘,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오방떡소녀의 블로그 blog.naver.com/obangdduk

| 책소개 |
자전적 에세이 만화. 상큼발랄한 투병카툰. 지금은 절판된 <암은 암, 청춘은청춘>의 내용이 전반부에 실려 있고, 그 이후의 속편 이야기가 후반부에 담겨 있다. 잘 나가는 엄친딸 오방떡소녀는 27살의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 힘겨운 투병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특유의 상큼발랄함으로 고난 속에 숨겨진 행복을 하나씩 발견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나간다.




오방떡소녀의 행복한 나날들

조수진 글/그림,
책으로여는세상, 2010





암은 암, 청춘은 청춘

조수진 글/그림,
책으로여는세상, 2009 [절판]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

비벌리 엔젤 지음, 조수진 옮김, 책으로
여는세상, 2009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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