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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길에게 길을 묻다

갈 수 있지만 갈 수 없는 바닷길을 가다 l NLL북방한계선을 가다


서울 한 복판,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그렇게 평안
할 수 없다. 사진 작가에게 주어진 하늘의 선물을 손으로 받아 든 느낌이랄까. 커피의 향이 코를 타고 들어오고, 뜨거운 커피 물이 내 몸 속으로 들어 올 때면 그저 ‘평안하도다’를 외칠 뿐이다. 평안한 나라에 살 수 있는 것 감사하다며 기도가 나올 때쯤 ‘맞아, 우리나라는 휴전 상태의 분단 국가지.’ 여기서 불과 백오십 키로 남짓 북으로 가면 우리가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그런 곳이 있다. 번뜩 정신이 들만한 상황인데도 왠지 받아들이기 싫은 선고처럼 그렇게 우리나라는 어쩌면 슬픈 국가다.

서 해 5 도 를 내 가 슴 에
2010년 8월부터 10월까지 해병대의 도움을 받아 국내작가로는 처음으로 NLL북방한계선을 촬영했다. NLL이라 함은 Northern
Limit Line, 말 그대로다. 우리가 가야 할 북쪽의 끝이라는 말이다. 원래 북쪽의 끝은 여기가 아니었다지. 이 한계선을 두고 거쳐온 복잡한 이야기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곳은 우리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완전 무장한 지역을 사진기를 들고 촬영한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네 삶의 곳곳은 비슷했다. 그 섬 들에도 왕눈이 커피숍이 있었고, 이방인 호프집도 있었다. ‘그렇지, 여기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는 거잖아’ 그렇다. 이곳에도 다른 민족이 아닌 우리 민족이 사는 곳이다. 짜디짠 바다 냄새가 만연한 이곳은 바삐 움직이는 꽃게잡이 어선들로 가득했고, 그곳엔 당연히
어부들로 충만했다.


배 를 타 고 나 서 다
넘실넘실 대는 바다는 마치 내 안에 무엇이 넘실대야 하는지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바다 끝을 프레임에 담아 보려 해도 출렁이는 배 위는 서 있는 사람의 속은 엄청나게 힘들다‘. 아, 나에게 은혜가 필요하다.’ 겨우겨우 참고 있는 나에게 그 바닷물 위에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아침 햇빛은 북방한계선에 나리는 은혜로움이었다. 속이 좀 편해 질 때쯤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시時로 변하는 바다의 색깔을 담고 있자니 북방한계선을 두고 이렇게 저렇게 변해 왔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마주대하는 느낌이다.

그 곳 을 셔 터 로 누 르 며
두말 할 것도 없이 이곳은 군인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다니며 그들을 담는 다는 것은 내 젊은 시절의 시간을 담는 듯했고, 우리의 아픈 분단의 상황을 담는 듯 했고, 그들을 보내고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담는 듯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누구나 한 번은 다녀와야 할 군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와 같은 구호에서 말하듯 아직도 군대를 지배하는 암묵적 동의는 피하고 싶고 면하고 싶은 곳일지 모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전쟁이야 말로 피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을 하러나가든, 그 전쟁이 잠시 멈춰선 휴전을 지키러 나가든 전쟁의 상황은 피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NLL을 배로, 발로 다니며 촬영하는 내내‘ 나는 누구인가.’ 나에게 수없이 물었다. 이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은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동안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끊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끊을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편하게 여행하기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번 촬영은 개인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과 잔잔한 바다의 아름다운 빛을 보면서도 마냥 행복할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바라보기만 할 뿐 만질 수 없는 아쉬움은 또 다른 아픔이기도 하다. 눈에서 보이는 것들이 분명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만큼 이 땅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바다를 응시하는 해병의 눈빛에서 서도 나는 이 시대의 아픔을 느꼈고, 카메라 앞에서 빛나는 웃음을 보여준 그들의 밝은 미소가 아이러니하게도 왜 그렇게 아프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있 어 서 는 안 되 는 일 이
11월 23일 촬영 차 떠난 프랑스 파리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내가 돌아온 시간 바로 몇 십분 전에 연평도에는 북한의 공격으로 포탄이 떨어지고 군인들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내가 거닐고 찍었던 연평도 마을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화면이 방송 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은 시간 나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과 함께 걸었다. 진정할 수 없는 마음에 뉴스에만 눈이 갔다. 얼마 지나자 뉴스 속보에서는 아픈 소식을 전했다. 두 명의 해병이 전사했다는... 아프다, 진정 가슴이 아프다. 눈에 선한 그들의 빛나는 미소가 떠올라서 더 아프다. 내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던지던 그 천진난만한 젊음들이 생각나서 아프다. 이들의 죽음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아프다. 짧은 글로 대신 할 수밖에 없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붉은 명찰 해병대원에게 심심한 애도를 보낸다 . 부디 전쟁 없는 곳에서 편안히 잠드시길...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신미식|디자인을 전공한 후 15년 가까이 그 분야에서 일해 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고 사진에 미치기 시작하면서 17년 동안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며 여전히 여행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독한 방랑벽을 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