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마카오에서 열린 한 음악시상식에서였다. 힙합그룹 DJ DOC가 ‘나 이런 사람이야’를 부르며 현란한 랩을 쏟아내고 있을 때, 무대 한 편에서 가야금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연주자는 드레스 차림의 이하늬였다. 화려한 대중음악 속에서도 결코 그 존재감이 떨어지지 않는 가야금 선율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시아 16개국으로 중계 방송된 이 무대는 그녀니까, 그녀이기에 가능한 무대였다. “가야금 전공자로서 이런 작업이 재미있어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운 접합점을 발견하는 게 제 오랜 관심사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작업이에요.” 예술 안에서 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꿈꾸는 그녀는 호기심과 열정이 왕성한, 눈빛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글 정미희 | 사진 탁영한


빛이 비치는 길을 따라
그녀는 가야금 연주가인 어머니 문재숙 씨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가야금을 연주했다. 늘 국악을 듣고, 연주하면서도 그녀 안에는 순수 국악만 아닌 다른 분야와 접목해 종합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가 꿈틀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종합예술형태를 좋아했어요. 늘 같은 가야금 독주 무대는 재미없는데, 가야금 연주에 장구 장단을 곁들여 춤을 춰보면 어떨까. 가야금 산조의 흐름을 타서 서예가가 붓글씨 쓰는 퍼포먼스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국악과 다른 분야의 접합점을 찾는 것에 대한 욕구가 제 안에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런 접합점을 찾고, 예술 안에서 놀고 싶은 욕구로 그녀는 한때 유명 연예기획사의 연습생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연습생 생활은 가장 정직하게 제 나이를 표출했던 방식 같아요. 그 때 저는 춤을 추고 싶었거든요. 제가 듣는 음악과 전공하는 음악이 너무 다른, 그 벽을제가 허물지 않고, 그 모순을 제가 극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음악을 들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부터도 슬플 때 가야금 계면조나 산조를 듣지는 않거든요. 연주를 하면서 그런 감정을 다시 불러오긴 하지만, 내 생활에서 같이 즐기고 같이 호흡하진 못했죠.” 국악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확대 하고픈 열망이 그녀 안에 충만했다. 20년간 자신 안에 쌓아온 기본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새로운 분야를 향한 도전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기획사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음악적으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학원 생활과 연습생 생활을 병행하는 시간이 한동안 계속됐다. “제일 힘들었던 건 가치관 자체가 다른 음악을 하는 거라서 모드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제일 먼저 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학교에 가서 가야금을 연습을 했어요. 대학원 과정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는 커리큘럼이기도 했죠. 오후까지 수업을 듣고 다시 모드를 바꿔서 기획사에 가서는 중학생들과 연습을 했어요. 몸이 힘들긴 했지만, 저는 그 때 너무 행복했어요. 그 자체로 저는 살아있는 것 같았거든요.”

딛고 일어나면 보이는 것들
그녀가 가야금을 선택했던 것은 자의라기보다는 운명에 가까웠다. 가야금 연주가인 어머니를 따라 언니도 가야금을 선택한 터였고, 그녀에게도 자연스레 가야금이 쥐어졌다. 만약 재능이 없었다면, 일찍이 다른 길을 갔을 테지만 언니도, 그녀도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저는 제가 가야금 연주의 재능을 타고 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하면 잘 했죠. 저는 4살 때부터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출발선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그게 3년이 가고, 4년이 지나니까 바뀌더라고요. 노력하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는 ‘내가 천재가 아니구나,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죠.” 아무 것도 아니기에, 유전자 안에 어떤 것도 받은 것이 없기에 나는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너는 재능이 있어”라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도, 그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한 곡을 연주하려면 한 시간이 넘는 긴 호흡의 음악, 그 음악이 그녀를 다듬어 갔다. 하루 12시간 넘게 벽만 보고 가야금을 뜯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음악과 지난한 싸움을 통해 겸손을 익혔다.
하지만 그녀에게 음악은 곧 언니와 경쟁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언니가 다닌 학교에 저도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인생의 사활을 걸었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내 자신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열등감이 너무 싫었던 것 같아요. 그 때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아무리 아등바등 하고, 제 나이 또래에서 최고여도 넘지 못하는 벽 2개가 제 앞에 버티고 있었죠. 집에서 편하게 연습을 할 수도 없고, 어디가나 누구 딸, 누구 동생으로 불리는…. 잘하면 당연하고, 못하면 이상하게 보는 시절이었어요. 저한테 있어서 그 시간은 항상 2인자, 3인자여야 하는,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과 싸우는 느낌이었어요.” 그 짐은 오랫동안 그녀를 눌렀다. 그런 마음은 ‘엄마는 정말 나를 사랑할까?’라는 생각에까지 그녀를 내몰았다. 외로운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면서 어머니의
사랑 또한 깨닫게 됐다. 의심할 수 없는 그 사랑으로 그녀는 자유를 얻었다. “결국 가치관 차이와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걸 벽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벽인데, 그걸 제가 점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면 이만큼 높은 디딤돌이 없는 거죠.” 그녀는 이제 그 시간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마련한 연단의 시간이었노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 연주자가 그녀의 음악적 스승이자, 든든한 후원자라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가 하루 종일 밖에서 연기나 다른 일을 하더라도 집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연주를 할 수 밖에 없는, 음악적인 원천은 아주 확실하게 있는 셈이죠.” 이런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미스코리아대회가 터닝 포인트였다.

예배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기쁨
“미스 서울이 끝나고 나서 합숙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제게 먼저 예배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과연, 거기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한편으로 기대가 되고, 한편으로 걱정도 됐어요.” 그녀는 어디가나 먼저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비전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기도 공동체를 만들어 예배했다. 그 모임을 하나님이 굉장히 기뻐하신다는 걸 알기에, 합숙하는 곳에도 예비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합숙 전 날에 짐 싸는 걸 내려놓고, 그 곳에서 만들 기도 모임에 초청하는 쪽지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합숙 첫날 다른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저는 각자의 자리에 그 쪽지를 놓아두었죠. 솔직히 저는 많은 사람이 참석할 줄 알았는데, 한명도 안 오는 거예요. 혼자서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나타났어요.” 함께 기도하며 계속 모이자, 한 명 두 명 들더니 3~40명이 참석하는 모임으로 커졌다. 그렇게 되자 주최 측에서 기도 모임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계속 진행을 하면 제명하겠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그냥 모였죠.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모이길 원하셨던 것 같아요. 마지막 날에는 저랑 그 친구랑 둘이 남았어요. 결정은 하나님이 하실 테니,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정직하게 하자고 다짐했죠.” 그리고 결전의 날, 그녀는 미스코리아 진을 차지했다. “이전 대회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김주희 아나운서가 저에게 왕관을 씌워주면서 ‘하나님이 정말 귀한 선물을 주셨네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는 그게 정말 면류관처럼 느껴졌어요.” 대회를 시작하기 전, 딱 봐도 태어날 때부터 미스코리아인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트레이닝 한 번 하지 않은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주신 말씀이 있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잠4:8~9)’ 순간 성경책의 활자가 확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은 그렇게 그녀에게 이루어졌다.


미스코리아가 되고 난 후, 모든 것이 집안 덕분이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저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한테도 할 수가 없잖아요. 하나님, 저는 너무 억울하다고.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한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너무 억울하다고 기도를 했어요." 그런 오해와 편견들은 그녀가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 나가 주목을 받은 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하나님의 뜻은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은 모든 걸 선으로 다 갚으셨어요. 그리고 대회 참석으로 인해 가족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며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어요. 부모님께서 이건 하나님의 일이고, 나라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너를 도울 거라고 하시면서, 멕시코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 내내 함께 해 주셨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그간의 모든 감정들이 회복되는 기쁨을 누렸다.

나를 나 되게 하는 것들
그녀의 가족들은 매주 한 번 가정예배를 드린다. 말씀 나눔을 통해 같은 가치관을 나누고, 서로를 염려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공유하는,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를 이룬다.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어떻게 살지. 하나님 없이 다른 가정은 어떻게 하나가 되지. 사랑으로 하나가 되나. 어떤 사랑으로? 그게 궁금할 정도예요. 우리 가족이 가정예배를 드리는 게 아니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가족이 사는 거예요.”
그렇게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그녀도 대학교 1학년 때엔 당연한 듯 믿어온 하나님의 존재를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연히 사주카페에 들어간 것이 계기였다. “추운 날씨였어요. 차를 마시고자 했는데 눈앞에 그 카페가 있더라고요. 저희 언니는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사촌언니는 그냥 들어가서 차만 마시자고 했죠. 저희가 가서 자리에 앉으니 사주 보시는 분이 오셨어요. 크리스천이라 사주를 보지 않겠다고 하다가 본의 아니게 토론을 했죠.” 그렇게 대화를하던 중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실까란 질문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 때 제 꿈이 선교사고,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이고, 교회 중심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저 자체가 없는 거였거든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제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고, 제 인생을 건 질문이었어요.” 그녀는 그 때부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친 듯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히브리어를 배워 원전을 읽고, 외경을 읽고, 성경공부에 매일 참석하고, 심지어 꾸란을 읽는 모임까지 참석했다.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 때 만난 <순전한 기독교>는 저에게 있어서 해답서 같은 책이었어요. 정말 <순전한 기독교>를 몇 번을 읽었는지 몰라요. 신앙인은 지성도 있어야 하고, 마음도 있어야 하고, 행동도 있어야 하는데 저에겐 마음과 행동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전 까진 성경이 스스로 자증하는 부분만 초점을 맞추었던 거죠.” 마음과 행동에 지성을 더한 그녀는 하나님을 더 깊고 뜨겁게 체험했다. 그 훈련의 시간을 통해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균형 있게 대답해 줄 수 있는 답을 찾았다. 바로 자신의 삶과 시간으로 정제한 고백으로 말이다. 그 때의 경험은 지금의 연예계 생활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켜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그녀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꾸는 방법 중에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몸으로 하는 비전트립을 떠난다’는 항목이 있다. 후원 아동에게 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낮아져서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최고로 대우하고, 배려하는 환경에서 짐짓 한없이 마음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님이 국악 찬양 1세대로 전공을 활용해 사역을 하셨던 것처럼, 그녀 또한 또 다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길 꿈꾼다. 하나님 앞에서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보답하는 거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몸에 베인 그녀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이유가 있는데, 그 몫을 해야 하나님이 더 힘이 나실 거라며 웃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걷는 그 길 위에 항상 깨어 동행하려는 열심만으로도, 그녀는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사람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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