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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비뚤어질 테다

키우는 것과 먹는 것은 하나

구제역 세 달째. 피해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텔레비전은 이 순간을 참 아이러니하게 담아낸다. 뉴스에선 처참한 구제역 살처분 현장과 축산 농가 소식이 전해지고, 이어지는 공익광고에선 앵커들이 한우 소비를 강조한다. 정보프로그램의 최고봉, 맛집 프로그램은 육식 삼매경이다. 지글지글 익은 고기를 먹으며 손님들은 “맛있다”, “최고다”를 외친다. 아, 마음이 산란하다. 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한우 소비를 촉진해야 하는 입장도 안다. 다만, 나는 그저 산 채로 땅에 묻혀야만 했던 생명들에게 미안했다. ‘평소에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삼겹살이면서 무슨’ ‘아니, 그래도 저렇게 산 채로 땅에 묻히는 건 너무 불쌍하잖아’ ‘먹기 위해 죽이는 거나, 아파서 묻는 거나 불쌍한 건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마치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 이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잇닿아 있는 생명
현재 우리나라는 구제역 위기경보
‘심각’ 단계(2010년 12월 29일자)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5천 6백여 농가에서 316만 4천여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됐다(2011년 2월 8일 기준). 지금까지 국내 사육 중인 소, 돼지의 1/5이 생매장 된 거다. 여기에 살처분 가축 매몰지에서 사체가 부패하며 뿜어내는 침출수가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문제까지 터졌다. 그야 말로 설상가상이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해 11월부터 그것을 해결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련의 문제들은 논외로 하고, 이런 사태에서 과연 나 같은 소비자는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 국내산 소고기 말고, 수입산 쇠고기를 사 먹는 것? 이참에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 이런 극단적인 선택 말고, 자식 같은 소를 잃어버린 농민과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죽은 가축들이 다시 이런 일을 안 당하게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 것을 요구하듯이, 소가 소답게, 돼지가 돼지답게 살 수는 없는 걸까?

정말 이럴꺼야!
구제역과 맞물려, L마트에서 ‘통큰 치
킨’에 이어 ‘통큰 갈비’를 들고 나왔다. 미국산 갈비를 100g에 1250원에 팔았다(1월 6일~9일). 전국에서 200t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구제역 농가는 시름에 잠겨있는데 수입산 소고기 행사를 했다며, 비난을 사자 이들은 ‘통큰 한우’ 행사를 했다. 준비된 50t이 다 팔려나갔고, 사람들은 수입산에 비해 너무 적은 양이었다며 생색내기라고 비난했다. 치킨 한 마리를 5천 원에 팔려면, 갈비 100g을 아이스크림콘보다 싼 가격에 팔려면 도대체 그것들을 어떻게 키워야 가능하단 말인가. 몸하나 겨우 들어가는 공간에서 유전자변형사료를 먹으
며 성장 촉진제와 항생제로 빠르게 커가는 게 전부인 그들을 우리는 먹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육 환경 탓에 그들은 구제역 같은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어 삽시간에 죽어, 간다. 날이 갈수록 비싸지는 물가에 치킨 한 마리 배달 시켜먹는 것도, 소갈비 한 번 구워먹는 것도 힘든세상이다. 그러나 생산 과정을 무시한 채,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분명 우리도 병든다. 더 두려운 건, 이렇게 육식에만 의존하다간 결국 무엇을 먹고 살게 될지 모른다는 거다. 무조건 싼 것 말고, 바른 것을 고르는 선택에서부터 달라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면 나는 또 핑크빛 꿈을 꾸는 걸까?
이제 봄이 오고 있는데, 언 땅이 녹는 것이 반갑지 않다. 매몰이 대부분 혹한기에 이루어진 만큼 봄이 되면 언 땅이 녹으면서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이 사태가 그들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글 정미희

구제역(口蹄疫)이란, 한자 그대로 가축의 입과 발굽에 수포가 생기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소와 돼지, 양과 사슴 등 발굽이 2개인 우제류 동물만 걸리며, 발굽이 하나인 말이나 발굽 자체가 없는 인간은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