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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한페이지 단편 소설

거울을 안 보던 남자

한동안 거울을 안 보던 남자가 있었다. 회사 안의 화장실이나 사우나에 갔을 때 분명 그는 거울 앞에 마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젊었을 때엔 곧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곤 했는데 말이다. 볼록 튀어나온 광대뼈, 오목한 코, 벌어진 가슴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거울을 정확히 살펴보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흰머리가 나고, 눈이 쳐지고, 배가 튀어나온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해가 갈수록 점점 바빠졌기 때문에 거울을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가 다시 거울을 보게 된 것은 면도를 하다가 턱을 베어 버린 어느 봄날의 아침이다. 휴지로 벤 자국을 눌렀는데도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를 흘리고 있는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자신이 생각하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운전면허증 사진을 꺼내보았다.
이목구비는 비슷했지만 사진 속 남자와 거울 속 남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당황스러워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사진을 찍으면 원래 이상하게 나와요.”
그는 그날 밤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 스테인리스로 만든 명함 크기의 거울을 샀다. 얇고 크기도 작아서 지갑에 쏙 들어갔다. 그는 틈만 나면 거울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머리를 깎아도, 면도를 깨끗이 해도, 피부 마사지를 해 봐도 거울 속의 자신은 더 이상 자신이 생각하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아내와 딸에게 설명해야 할지, 회사 사람들에게는 또 어떻게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술에 잔뜩 취해 오랜 친구에게 고민을 풀어놓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넌 예전부터 이런 모습이었어. 변한 게 하나도 없다니까.”
그는 결심했다. 사람들이 반팔을 입을 무렵, 출장 갈 때 쓰던 작은 슈트케이스에 옷 몇 벌을 넣고 집을 나섰다.
화장대 위에는 저금해두었던 통장과 함께 쪽지를 남겨 두었다.
‘내 모습을 다시 찾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마시오.’
새벽 두 시, 지하도 계단의 후미진 구석에서 그를 만났다. 택시를 잡으려는데 도무지 빈 차가 나타나지를 않아서 반대편으로 건너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오백 원짜리 한 개와 천 원짜리 두 장을 그의 빈 그릇에 넣어 주었다.
“왜 거울을 계속 들여다보고 계세요?”
그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짓말 같으면서도 거짓말 같지 않은 이야기였다. 집을 나온 뒤 삼 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 읽고, 정신과 상담도 받아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삼 년 동안의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더 익숙하다고 했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낳고, 또 일을 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십 년 동안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이라고 했다. 단순히 얼굴의 윤곽이나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마음까지 통째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라고 했다. 그런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첫 직장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는, 양복을 입은 내 모습이 어색하니까. 나는 만 원짜리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손에 들려 있던 거울을 건넸다.
“이건 아무한테 주는 게 아니니까 받아. 어차피 여분의 거울은 많이 있으니까. 그리고 잊어버릴 만하면 거울을 봐 주라고. 안 그러면 나처럼 돼.”

나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그는 받지 않으면 화를 낼 거라고 으름장을 부렸다.
나는 가끔씩 지갑을 꺼내 거울을 들여다본다. 호, 하고 소매로 닦아 내면 반짝 반짝 빛이 나면서 얼굴을 비춰볼 수 있다.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는 나에게 주변에서는 애인이 생겼냐고 농담을 한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약간 다르게 생겼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점까지 보인다. 코에 땀구멍이 많고, 귀에는 솜털 같은 것이 보인다. 피부의 색이 예전보다 검어진 것 같다. 그의 이야기 탓인가?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 모습이 낯설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마다 거울에 대고‘ 안녕, 잘 지내니?’라고 말해본다.

서진|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일명, 한단설 1pagestory.com)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3nightson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