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교회에 갔다. 여름성경학교가 계기였다. 방학이 되면 얼굴이 새까매지도록 밖에서 놀 수 있었던 그 시절, 그날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한낮의 태양을 즐기며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었다. 조금 출출해졌을 즈음 예쁘게 생긴 선생님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얘들
아, 안녕? 지금 요 앞에 있는 교회에 여러 친구들이 모여서 게임도 하고, 간식도 먹고 그러는데 같이 가서 놀래?” 우리는 조금 무서웠지만 간식도 준다고 하고, 게임도 한다고 하니 한 번 따라 가보기로 했다. 그날 저녁 부모님께 교회라는 데를 갔다 왔는데 재밌었다. 내일은 달란트 시장
이라는 것도 한다는데 또 가도 되냐고 여쭤보았다. 당시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아니셨지만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이 교육상 나쁘지 않으니 가도 좋다고 하셨다.

이야기로 변하니 읽히네
사회 불안이 훨씬 심화된 요즘은 이런 식으로 전도가 잘 될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이었던 그 때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 후로 주일을 지켜 교회를 갔는데, 가끔 예배가 조금 지루하다 느껴지거나 공연히 늑장을 부리고 싶은 주일에는 집에서 어린이 만화를 보며 빈둥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5학년 때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어린이 만화동산보다 더 재미있게 설교해주시는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은 베드로가 되었다가, 예수님이 되었고, 모세가 되었다가, 바로 왕이 되기도 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성경을 풀어주니 성경이 딱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 년 후 다시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고 그 후로 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통 틀어 보아도 그렇게 재미있는 설교자는 다시 없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 설교에만 기대는 것이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경은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잘 모르는 단어도 많고(바리새인이 뭐지? 인자는 또 뭐야? 진설병? 어휴 안 그래도 생소한 지명, 사람 이름도 많은데 정말 답답하다... ㅠ_ㅠ), 말투는 권위적이라서 무서웠다(것이니라, 없느니라, 아니하였느냐, 몰려왔음이더라, 망하느니라... ㅠoㅠ). 강단을 통해 듣기로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면서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편지는 사랑을 느끼기에 너무 딱딱했다. 그러던 중 고모의 성경책을 보게 되었다.
가톨릭 신도인 고모의 성경책 표지에는 공동번역성서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호기심으로 들춰본 것치고 성과가 굉장했다. 성경이, 재밌었던 것이다. 정말 편지 같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밤마다 고모의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해하고, 보완하며, 깊어지는 묵상
그 후로 표준 새번역, 표준 새번역의 개정판인 새번역 성경, 쉬운 성경, 현대인의 성경, 우리말 성경, 개역한글의 개정판인 개역개정 성경, 최근 번역된 메시지 성경(신약) 등을 읽었다. 나는 여러 버전의 번역본을 두고 읽는 것이 좋다. 특정 성경 버전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단에서 인정한 성경이 개역개정이니만큼 다른 성경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시거나“ 개역개정이 아닌 성경은 모두 불태워 버려야 해!”라고 하시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좀 불편했다. 라틴어 성경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종교 개혁 이전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생각나서였을까. 마가복음 2장 6절로 8절까지의 말씀을 개역개정, 공동번역, 메시지 버전을 함께 읽어볼까 한다(공동번역과 새번역은 용어 및 어투가 있어 근소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유사성을 보여 하나만 선택하였다.)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개역개정).

거기 앉아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하며 중얼거렸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공동번역)

거기 앉아 있던 몇몇 종교 학자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말했다“. 저렇게 말하면 안 되지! 저것은 신성 모독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곧바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 그리 의심이 많으냐?” (메시지)

용어만 보아도 ① 서기관, 율법학자, 종교학자로, ② 신성모독, 하느님을 모독으로, ③ 죄를 사하다, 죄를 용서하다로, ④ 곧 중심에 아시고, 곧바로 마음으로 알아채시고, 곧바로 아시고로, ⑤ 마음에 생각하느냐, 생각을 품고 있느냐, 의심이 많으냐로 서로 다르다. 개중에는 우리 문화로 이해하기에는 생소한 용어가 있고, 오늘날 잘 쓰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도 있다.
‘중심에 안다’ 같은 표현은 거의 기독교인들끼리 통하는 전문용어가 된 것도 같다.

교회에서 좀 더 다양한 성경의 역본을 인용하고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이하고 친근한 언어로 기록된 역본들의 장점이 있으니 말이다. 성경의 말씀은 하늘의 비밀스러운 언어라고 하지만 그 비밀이 어휘를 이해하기 힘들거나 타문화나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든 것, 혹은 문투를 생경하게 느끼는 것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동번역에서 시작하여 메시지까지, 개역 성경과 더불어 지경이 넓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훨씬 풍성하고 달콤하다. 오늘, 꿀보다 더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과 찐하게 교제하며 아름다운 밤을 보내볼까나. 글 신윤주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PEOPLE반짝반짝 이레숑문화동네 사람들아름다운 당신의 오늘사람과 사람햇빛 아래 노니는 삶김준영의 페북 친구life동선예감독자와 3분 통화공간공감편집장의 편지그 동네 가게길에게 길을 묻다한페이지 단편 소설살림의 나날임양의 사소한 일상오늘의 생각spirituality문화선교 리포트감성수업두 손을 모으다CCM 창착연대2013 특집책이 피는 출판사크리스천+인디밴드culture문화 다이어리추천 영화추천 공연추천 전시추천 음악추천 도서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클래식/국악의 숲을 거닐다서랍 속 미술관오늘, 을 읽다고전으로 오늘을 읽다영화 속 현실과 만나다TV 상자 펼치기비뚤어질 테다뉴스 따라잡기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