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로 보든 굴드는 … 모든 것의 관습적인 영토에서 벗어나 연주를 통해 자신의 거주지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초연한 남자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 에드워드 사이드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우리 곁에 살아 있는 현재적 존재로 느껴집니다. 그에 대한 책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죽기 1년 전에 녹음한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 SONY, 1982)은 20세기 최고의 명반의 영예를 안고, 지금도 나사NASA 우주선에 실려 우주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기행(음반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그의 허밍소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주회를 취소하고-그것도 피아니스트가 말이죠, 한 여름에도 목도리와 장갑을 두르고, 병균이 옮을까봐 악수조차 하지 않았으며, 평생 독신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던 이력)과 갑작스러운 죽음은 신비감마 저 더해져 오늘도 그의 숭배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글렌 굴드, 바하 음악의 혁신적 해석과 경이적인 퍼포먼스를 성취해낸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였지요. 혹자는 굴드의 파격적인 바하 연주를 듣고 ‘미친놈의 연주’라며 혹평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그의 연주가 치명적 매혹을 지니고 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가 들려주는 바하의 푸가는 마치 달빛을 받은 물결처럼 영롱하게 풀어지면서도, 때론 폭풍처럼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을 구현함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 버리고 맙니다. 클라리넷 연주자 다비드 오펜하임은 그의 음악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지요.
“나는 소름이 돋았다…”
기괴하리만큼 독특한 연주 스타일과 행동도 언제나 청중의 이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자신을 위해 만들어 주신 낮은 의자를 평생 가지고 다니며 거기에 앉아 꾸부정한 자세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흥얼거리는 그의 연주는 청중들과 녹음 엔지니어들을 긴장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기행의 정점은 연주자로서 절정이었던 서른 세 살에 일어났지요.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는 무대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업적콘서트 연주가 연주자를 망치고 청중들을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게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연주회에서 해방된 그는 본격적으로 자기만의 완벽한 세계를 구축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바하를 넘어, 힌데미트, 쇤베르크 등 전위적이면서 혁신적인 레퍼토리로 장르를 넓혀 자신만의 해석과 굴드사운드를 만들어내려고 했지요. 하지만 그는 음반에만 만족하지 않고 음악이 소통되는 다양한 형식들을 끊임없이 탐구했습니다. CBS에서 피디로 변신하여 <고독삼부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하고 또 영화배우로, 철학자로, 기술자로 음악이 구현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전위적인 공간들을 쉼 없이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음반 외에도 수많은영상물을 남기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그의 시도가 대중의 공감을 늘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걸 원했던 건 아니었구요. 그를 광기 어린 예술가로 보는 시선도 많았고 그의 파격적 언행에 대한 편견과 오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정작 괴롭혔던 것은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우울증이 평생 그를 괴롭혔으며 사운드에 대한 지독한 완벽 의식과 극도의 건강염려증이 그를 집요하리만큼 서서히 망가뜨려갔습니다. 결국 그는 50세라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고, 사인은 약물중독에 의한 뇌졸중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기이하리만큼 독특한 천재성은 그렇게 사라졌지요. 아직도 신비로 남아 있는 그의 삶과 음악.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가 구축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이들은 결국 그 비극을 뛰어넘어, 결을 거슬러 올라간 한 비르투오소(virtuoso: 예술이나 도덕에 상당히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 주로 음악에)의 황홀한 영토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순수와 열정 그리고 자유의 세계를 말이죠.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가 굴드를 듣는 이유입니다.

백광훈|따사로운 창가에서 클래식과 커피한잔을 즐길 것 같지만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열혈 애청자인 문선연의 책임연구원이자 두 아이의 아빠고 목사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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