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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문화동네 사람들

이끌림을 따라, 춤추듯 가볍게 ㅣ 탤런트 박수진

 

무거우면 쉬이 지친다. 몸이 무거우면 멀리 갈 수 없고, 생
각이 무거우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마음이 무거우면 상대방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 몸도, 생각도, 마음도 가벼워야 춤추듯 살 수 있다. 어떤 것이 다가와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반가이 맞이하는 삶. 그것은 어느 때나 나를 지키시고 돌봐주시는 분이 있음을 기억하고 신뢰하며 자신의 전부를 맡겨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홀로 완벽히 책임지려 하고, 흘러오는 것들을 애써 거스르는 삶은 고인 물처럼 신선함을 잃어버린 채 앞으로 잘 나아갈 수가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나님께 다 맡겨요. 그냥 다.” 그렇게 말갛게 고백하는 탤런트 박수진을 만났다.  글 정미희 | 사진 탁영한

그대로 ‘나’인 시간, 가장 빛나다
10대에 데뷔했지만, 그녀에게선 그 나이 이상의 능숙함도, 필요 이상의 세련됨도 느껴지지 않는다. 20대 중반의 풋풋하고 발랄한 여자,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배어난다. 자신의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것이 곧 아름다움의 기준이자 미덕인 사회에서 그 또래다움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케이블 채널 올리브에서 ‘2030 여성을 위한 로드맵’을 표방한 <테이스티 로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 자연스러움은 빛을 발했다. “제가 뭔가 틀에 박혀있는 걸 어려워하고, 어색해하는 편이에요. 정식 MC처럼 경직되어 진행하지 않고, 지선이 언니개그우먼 박지선와 제가 수다 떠는 것처럼 촬영하는 스타일이어서 저와 잘 맞았어요. 진행자였다기보다 보통의 20~30대 여자들처럼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며 즐기는 동안 제 원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그런 장점은 서서히 연기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작년 여름,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20대중반의 여대생 은혜인 역을 맡아 연기하며 그동안의 연기력 논란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부족하지만 이제야 저와 맞는 캐릭터들을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직 경험도 많이 없고, 연기를 잘 모르지만 자신과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나는 게 연기자들에게는 큰 행운이고, 어떨 땐 전부인 것 같기도 해요. 이것저것 하면서 부딪치고, 깨지며 이런 역할은 좀 더 쌓이고 해야겠다, 이런 역할에서는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이 나오는구나 하면서 저에게 맞는 역할이 어떤 건지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아요.” 자신의 장점과 부족함을 깨닫고, 조금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녀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가 그 중 하나였다.

그 시간 할 수 있는 것들

연기자를 꿈꾸다 18살에 걸그룹 ‘슈가’의 멤버가 된 박수진은 3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2006년까지 활동했다. “확실히 지금보다 육체적으로는 더 힘들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스케줄을 어떻게 다 소화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엄청 힘들었지만 서로 위로할 수 있으니까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어요. 전 여자 형제가 없이 자라서 여자 넷이 하루 24시간을 항상 같이 있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 나이였기에, 시작이었기에 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인것 같아요.” 그렇게 5년의 가수 활동을 마치고, 준비 기간을 거쳐 연기자로 데뷔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처음에 연기할 때는 그 캐릭터에 누구라고 불리기보다 슈가 박수진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시간과 경험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너무 큰 것을 바랐던 것 같기도 해요.” 그녀의 연기를 두고, ‘연기력 논란’이라는 기사가 뜨고, ‘가수 출신 연기자’의 연기력 부재를 이야기했다. “그 때는 내가 가수 출신 연기자라서 안된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자질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제가 연기를 잘 하지 못했었고, 솔직히 많이 부족했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을 그냥 모면하고 싶어서, 이건 가수 출신 연기자들의 문제야, 다들 가수 출신이기 때문에 더 색안경을 끼고 연기력 논란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사람들이 감동할 만한 연기를 하고, 역할을 잘 소화했다면 그런 논란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부딪쳐서 깨달으며, 그녀의 생각과 마음이 함께 자라갔다.
“데뷔 전에는 엄청 밝은 성격이었어요. 연예인을 하면서 별 생각 없이 한 한 마디가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면서 조금 내성적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 좀 더 신중해지고. 결과적으로는 활동하면서 생긴 노련함으로 다시 제 밝은 모습을 찾았죠.”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따지지 않는, 큰 소리를 내고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했던 성품도 변했다. 지금도 화평이 모든 관계의 핵심이긴 하지만, 무조건 참기보다는어떤 면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이야기 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성품이 무르익는 동안 연기에서도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다.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천만번 사랑해> 때는 난정이로 봐 주시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때는 혜인이로 봐 주시더라고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그 캐릭터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거예요. 그 때 깨달았어요. 아, 이게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구나. 이제 내 노력들을 조금씩 알아주시는구나…” 그런 작고 소중한 경험들이 그녀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 올해 큰 축복 중 하나는 그런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중보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가장 솔직하게 서로를 만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미인들의 모임, 일명 하미모를 통해서다. “저보다 탤런트 김성은 씨가 먼저 그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함께 연탄봉사를 가자고 해서 모임에 가게 됐어요. 교회를 다녔지만, 함께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모든 시선이 저한테 집중되는 것 같아서요.” 하나님 중심으로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웠던 마음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변했다.
화요일마다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됐다. “신앙이, 확실히 삶의 질을 바꿔놔요. 같은 직업의 동료들과 함께 하니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제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 본인의 일처럼 생각하고 위로해 주시고, 자신의 경험들을 나눠주세요. 힘들때 모임에 가서 털어놓으면, 항상 마음이 가벼워져서 돌아와요.” 인기 많고, 인정받는 여배우들이 본인에게 흠이 될 수도 있는 고백을 하면서 눈물로 회개하는 모습은 그녀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하나님 안에서 다시 깨닫고 있다. “어렸을 때는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어요. 그러다 사회생활을 통해 많은 고통과 힘든 시간들을 겪으면서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긴다면 교회에 간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생각했었어요.” 믿음이라기보다는 습관으로 기도를 하던 시절, 그녀는 가족의 건강 때문에 간절히 하나님을 붙잡게 되는 시간을 만났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말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한 분이시라는 것을 경험했어요. 아무 것도 없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힘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항상 재밌는 일, 신나는 일만 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아요. 항상 겪어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주시고, 또 그 상황에 따른 배움을 주시니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나님께서 다 맡겨요. 그냥 다.” 요즘 그녀는 하나님과 항상 대화하며 친밀함을 누린다. 그 친밀함으로 인해 스며드는 기쁨은 날마다 그녀를 새롭게 한다.

조만간 <박수진의 뷰티 테라피>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책이 발간된다. 피부에 관해 관심이 많은 그녀를 두고 주변 사람들이 농담처럼 말했던 일을 실천했다. 책 역시도 그녀의 평소 모습이 담백하게 담겼다.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스스로 주도해서 일을 진행해 가면서 존중 받는 느낌에 행복했고, 새로운 자신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책에 대한 기대를 조심스럽게 조근조근 풀어놓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누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기처럼 소화해내며 조금씩 자라가는 그녀의 내일이 기대된다. 그냥 여자로서 그 시기, 그 나이에 하는 일들을 하며 겪는 것들이 연기의 힘일 거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의 믿음처럼 그 모든 삶의 과정들을 그녀다운 모습으로 여유롭게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