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세수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집 앞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달려 나갑니다. 우리 새싹 모종들이 밤새 춥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흠뻑 물을 주고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문을 열어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요. 돌아오는 길엔 마을 어르신들과 유치원에 등교하는 아이들과 아침 인사를 나눠요. 유후~~ 품앗이로 함께 감자를 심기로 했던 이웃집과 시간 약속을 정하고, 시원한 막걸리를 사놓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오늘도 활기찬 아침을 시작한답니다.

나는? 아 참! 제 소개를 해야죠! 사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잠실, 목동, 분당 등의 거대한 신도시에만 살아온 차도녀(ㅋㅋ)랍니다. 이전에 시골 생활은커녕, 흙 밟고 나무 타며 개구리 잡으러 다녀 본 경험도 전무한 여자랍니다. 몸보단 머리 굴리기, 남보단 나를 먼저 생각하기 익숙한 서울깍쟁이. 그게 바로 저였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거냐구요? 어마어마한 반전이 있
었지요. 20대 중반까지 여느 대학생과 별 다를 것 없이 살던 저는 졸업이라는 또 다른 통과의례를 앞두고 막막함이 사정없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요, 남들처럼 취직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토익 몇 점 이상, 자격증 몇 개 이상, 평균 학점 몇 점 이상 … 스펙을 쌓아야 했어요. 학원에도 들락거렸고 그럴듯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도 했습니다. 외모는 또 어떤가요. 외모도 스펙이라는 말이 있듯이 피부 관리, 화장 기술, 다이어트까지… 정말, 졸업에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았는지. 아이고, 생각만 해도 이건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무리 시대가 이렇다지만, 이 세상에 맞춰 달려가자니 내 인생이 너무 딱했어요. 누구를 위한 인생인 건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이런 삶인지….

시골에서 함께 살기 내 주변에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애써 마음 달래며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 건 모여 보니 알겠더라구요. 공무원 준비를 하던 친구, 소설가를 꿈꾸는 친구,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 그냥 백수로 지내고 있는 친구. 20~30대 9명인 우리가 모인 거죠. 우리는 모두 과도한 경쟁과 소비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사회에서 협력이 불가능한 시스템에 답답해했고, 청년실업과 결혼이 불안한 시대상황, 믿을 만한 먹을거리의 부재, 너무 빠르게 굴러가는 거대한 도시, 그 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그리고 밀려드는 외로움에 가슴을 앓았죠.
우린 함께 고민했고, 결심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천천히 살아보자! 우리 스스로 우리가 살고 싶은 대안의 삶을 만들어보자! 그리곤 먹을거리, 일, 배움이라는 세 가지를 키워드로 정하고 어떻게 살아볼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한 것이 집구하기. 우리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농업을 하시는 18년 차 농부의 도움으로 바로 이곳, 경기도 이천의 율면이란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빼어난 자연 경관도, 특별한 관광자원도 없는 그저 평범하고 평범한 시골마을에서 5년째 방치된 흙 집 하나를 소개받았습니다. 아궁이가 있고, 황토벽으로 된 집이 너무 좋았죠.
한 달 이상을 집수리에 매달렸습니다. 벽에는 황토를 바르고, 무너져가는 아궁이를 살리고, 땅을 파서 수도관도 갈아 넣고, 비 새는 기와지붕을 메우고…
생전 안 해 본 일들이라 겁나는 것도 많았어요. 집을 고치다 부엌 벽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벽지를 떼어내니 벌레들이 우르르 쏟아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우리 집이 생겼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에다 비도 조금 새지만 세상 어느 집보다 값진 우리의 집이랍니다.

마음은 콩밭 우리는 집을 고치면서 밭도 함께 구했어요. 돌과 칡넝쿨이 많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이장님 댁밭을 얻어 가장 처음으로 콩을 심었습니다. 혹시 콩 세 알 이야기 아시나요? 예부터 농부는 콩을 심을 때, 한알은 하늘의 새가 먹고, 한 알은 땅속의 벌레가 먹고, 나머지 한 알을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항상 세 알씩을 심었대요.
그렇게 정성껏 마음을 담아 심은 콩 탓에 정말 제 마음은 콩밭에 가 있더군요. <마음은 콩밭>이라는 이름을 붙었죠. 간혹 콩밭을 보고 있자면 마음에 창의적 생각도 떠오르기도 해요. 마음을 콩밭에 빼앗겨 버렸나 봐요.
이 집에 살며 농사를 짓고, 마을 사람들과 만나게 된 지도 벌써 일 년. 친구라곤 평균 연령 60이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렇지만 전 이 마을 사람이고, 이 마을이 좋아요.
어머, 콩! 보러 갈 시간이에요. 제 마음은 콩밭에 있거든요.

임나은|경기도 율면에서 농부아저씨와 거나하게 한밤 지새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단하고 이쁜 젊은 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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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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