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스트레스 해소용 간식거리를 사러 동네 슈퍼에 들렀다. 딱 3천원어치만 사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과자봉지를 요리조리 둘러보고, 한참을 뜯어봐도 가격표시가 없었다. 그렇다고 따로 가격표가 부착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얼마나 사야 3천원이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과자마다 이건 얼마냐고 계산대로 가서 물어보자니 그것도 그렇고, 몇 달 새 팍팍 오른 과자 값이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았다. 아니, 소비자가 가격도 모르고 물건을 사야 하는 이런 상황은 도대체 뭐람?

한계점이 없는 상승모드
천 원 짜리 한 장으로 과자 한
봉지 사먹기도 버거운 현실에다가 쇳덩어리가 하나 더 얹힌 기분이었다. 과자 몇 봉지 정도는 가격이 얼마인지 걱정 안하고 쿨하게 사들고 나와야 하나, 갑자기 소심모드로 돌아선다. 원인은 오픈 프라이스(open price)제 때문이다. 제조업체가 표시하던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애고 유통업체가 상품의 판매가격을 결정함으로써 판매점끼리 가격 경쟁을 하라는 의도다. 아이스크림콘 가격을 지난해와 비교해 30% 인상하고, 판매점은 다시 아이스크림 50% 할인 판매를 하는 것처럼 권장소비자가격을 올린 뒤 다시 재할인해 파는 엉터리 세일을 차단하고,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게 목적이다.
허나, 한꺼번에 많은 양의 장을 보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들이 소매점에서 과자 몇 봉지를 사면서 가장 싼 곳이 어디인지 검색할 리가 있는가. 이 과자는 여기가 제일 싸니까 여기서 사고, 저 과자는 거기가 제일 싸니까 거기서 사는,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이것은 합리적인 가격 경쟁이 아니라 판매업자들에게 소비자들이 휘둘리는 횡포에 가깝다. 실례로 새우 과자 한 봉지에 어느 가게에서는 658원, 다른 가게에서는 900원을 받는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있었을 때도 가게마다 할인율이 달라 가격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한 계선이 있는 가격 편차였다. 게다가 오픈 프라이스제 도입 이후 가공식품들의 가격이 하나, 둘 인상되기 시작했다. 가격 인상을 두고 제조업체는 유통업체를, 유통업체는 제조업체를 원인으로 들었다. 여기 가나 저기 가나 어디 가나 남의 탓하기 바쁘다.
 
이상理想적인 이상異常한 생각
오픈 프라이스제는 1997년
화장품에서 시작하여 의약품으로, 1999년에는 텔레비전,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신사·숙녀 정장 등 공산품으로 확대됐고, 2004년에는 컴퓨터, 가구 등으로, 2010년 7월에는 의류 전품목과 라면, 과자, 빙과류, 아이스크림류로 확대됐다. 컴퓨터나 가구, 전자제품 등 구매 빈도가 낮고, 구매 경로가 비교적 단순한 물건의 경우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가격 비교를 하며 신중히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완전 가격 경쟁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상적인 제도가 아닌가. 하지만 현실 여건에 대한 고려와 제도적 후속 조치 없이 무한긍정만으로 시행된 이 제도에 소비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되어야 할 시장에서 내가 사는 물건 값을 믿을 수 없는, 신뢰 없는 거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거래를 과자 구입이 제일 빈번할, 어린 세대들이 배워가고 있다.

과자 한 봉지, 라면 한 봉지를 사면서 지불하는 몇 백원 차이의 여파는 더 큰 일을 불러올 것임이 명명백백하다. 이 작은 것에 무감각해질 때, 소비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점점 잃게 된다. 더 민감해지고, 더 지혜로워져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있다. 책임자 없는 회사에 손님으로 찾아갔다 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으려면 말이다. 글 정미희

* 이 글을 쓰고, 잡지를 발행한 것은 6월 말. 이후 지식경제부는 지난 7월 1일부터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빙과류의 오픈 프라이스제를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5월까지 빙과류는 18%, 비스킷과 아이스크림 가격도 각각 10% 넘게 올랐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최대 4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하네요. 한 번 오른 가격이 쉽사리 내려갈리 만무하고, 이 여파가 또 우리 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군요.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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