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언론이 청년대학생들 주요하게 다뤄준 적이 없지요.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와 ‘서울대총장실 점거’ 등으로 청년들은 집회, 시위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해요. 어떤 언론은 ‘침묵하던’ 청년들이 드디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도 하고요. 3년 전 이맘때, 유모차 부대까지 시청광장에 나서 촛불을 들 때만 해도 청년들이 일어서지 않아 몇몇 어른들이 ‘분노할 줄 모르는 20대’라고 칭한 것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변화인 거죠. 참여를 넘어서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청년들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교회뿐 아니라 교회 ‘청년’문화도별 변화 없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왜일까요?

이것도 부탁한다, 청년부~
복날이 다가오기 전까지 개들은 팔자가 늘어집니다. 잘 먹여 살을 붙여놔야 ‘그날’에 더 맛있고 풍성한 보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나는 오뉴월을 보낸 개는 ‘복날’을 맞아 사람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낍니다.
갓 스무 살이 된 청년들이 느끼는 당혹감도 이에 비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시나 취업준비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해서 ‘힘내라’, ‘기도해줄게’ 등등의 대접을 받았지요. 교회마다 차이는 있습니다만, 어느 교회는 고등부 임원이나 기타 등등의 큰일에서 빼주는 ‘특혜’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요, 이때는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면책특권’을 받아 넘어가기도 하지요. 공부하느라 힘드니까요. 그러나 빠르게는 1, 2월, 못해도 3월만 넘기고 나면 대학생이 되든 사회초년생이 되든 상관없이 상황이 변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적응기간이란 게 있어야 하는데, 상관없다는 듯 교회는 일을 줍니다. 왜요? ‘청년부’가 되었으니까요.
청년의 때, 이때가 바로 소위‘의무교육
은 마쳤고, 대학생이나 직장인이나 돈을 벌 수 있는 자격이 되었으며(실제로는 재정적 자립이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부양가족이 없으니 지금이 봉사, 헌신, 충성을 신나게 할 수 있는’ 귀한 때인 것입니다. 심지어 청년들은 각 개인의 봉사뿐만 아니라 ‘청년부’를 조직하여 더 큰 일에 힘쓸 것을 요구 받습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정말 일을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누군가가 혹은 어느 집단이 맡은 일을 썩 잘 해냈습니다. 그 다음에 잇따르는 일은 무엇일까요? 상, 칭찬? 아니죠! 정답은 ‘너도나도 부탁한다’입니다.

날로 새로워져야 할 의무
교회 안에서 부탁을 거절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교회의 직분을 맡은 사람라면 부모님 얼굴 때문에, 혈혈단신으로 왔다면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큼하고 발랄하게 ‘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자유’가 놓인다고 들어왔는데, ‘자유’를 사용할 수 있게는 된 것 같은데,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나니 ‘자유’를 행사할 시간과 여유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창의력 돋는 무언가’가 나올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요, 맡겨진 사명 다 감당하느라 시간과 체력을 소비한 이 청년들은 어른들에게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청년답지 못하다’는 평을 들어야 합니다. 하긴 그래요, 일신우일신 해야 하는 것이 청년의 본분일지도 모르지요. 청년들도 돌이켜 생각해봅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고민합니다. 복잡해집니다. 이내 무기력해집니다.
이런 일을 몇 년간 반복해서 경험한 20대 중∙후반 청년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상당합니다. 이것은 어느 광고에서와 같이 단순하게 피로회복제 하나를 입에 털어 넣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삶이란 게 다 그런 거다, 이 악물고 버텨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저 네가 약하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나도,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시간차가 있을 뿐, 모두 종국에는 무기력해지는 삶의 구조라는 것은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한번쯤은 생각해봐야죠, 그리고 어떻게든 그 판을 뒤엎을 기회를 마련해봐야지 않겠습니까?

제멋대로? 자신의 방식으로!
그래서 제안합니다. 청년들을 풀어주세요, 스스로 자유를 즐기고 사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요, ‘안식년’을 주세요. 제 멋대로 자라게 둬주세요. 왜 안 그러고 싶겠느냐, 나는 다만 제대로 잘 해낼지 그게 불안할 뿐이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네, 지금도 맘에 안 드는데 그냥 두면 더 할 겁니다. 정신 사나워지는 건 한 순간일 겁니다. 총장실 점거하듯, 맘대로 일을 저질러놓고 축제 즐기듯 신나할지도 모릅니다. 말세가 코앞에 왔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믿어주세요, 잡초가 자라나 무성해지고 제멋대로 가지가 자라나도 그저 쳐다봐주세요, 열매가 익어 뚝뚝 떨어져 썩어나가도 그 밭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요. 어르신들의 청년시절이 그저 부끄럽고, 연약했던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청년들을 믿어주세요.
아이가 제대로 걸으려면 잡은 손을 놔주어야 합니다. ‘놓지마, 놓지마’ 소리를 질러도 잡은 자전거를 놓아주어야 비로소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됩니다. 몇 번이고 넘어질 겁니다. 상처가 나고 멍이 들 겁니다. 아파서 원망하겠죠.
그래도 지켜봐 주세요. 곧 아이가 걷고 뛰듯이 청년들은 스스로 일어나 두 발로 서서 뭔가 새로운 청년만의 색을 드러내는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치입니다. 뭘 할 수 있겠느냐구요? 모릅니다.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될 지도 모르죠. 어쩌면 늘 반복된 것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그 무엇입니다.
청년 스스로가 찾아낸 ‘답’일 테니까요. 그러니 청년부와 청년들을 향한 우려를 거두시고 자치自治하고, 자치自致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글 원유진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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