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_ <장기하와 얼굴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악기는 무엇일까? 스트라디바리우스도, 대형 파이프오르간도 아니라 다름 아닌 사람의 성대이리라. 인간의 목이 단순히 연주뿐 아니라 말하기를 위해서도 창조되었다는 점은 성대를 더욱 특별한 악기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 말하기와 노래하기, 투박한 생활어와 정교한 시어, 대화의 일상성과 연주의 특수성과 같은 이항대립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계를 무너뜨릴 때, 음악은 음악다움이 없어질 수도 있지만 반면에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음악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가까이는 배철수, 김창완, 송창식의 음악에서 그리고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판소리와 민요에서 끊임없이 모색되었던 말하기와 노래하기의 결합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가장 능청스러운 균형감으로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비틀즈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복고적인 밴드 사운드 위를 걷거나 뒹굴거나 내달리는 장기하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귀에 착착 감긴다. 일상적이고 솔직한, 심지어는 찌질하게 느껴지는 노랫말로 말하듯이 노래하며, 노래하듯이 말하는 장기하의 ‘말-노래’들은 놀랍게도 밴드의 정밀한 연주와 백퍼센트의 싱크로율을 보인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정규음반 <장기하와 얼굴들>은 일상의 굴레를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고 솔직하게 묘사한다. 오프닝곡인 ‘뭘 그렇게 놀래’와 피날레인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는 정반대의 메시지로 사람들의 이중성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 한쪽 끝에는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추켜세우는 우월감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여 이유 없이 주눅 드는 열등의식이 있다. 양 극단을 오가며 피곤하게 살아가다가 결국 눅눅한 벽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져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보는 것이다‘( TV를 봤네’). 쇼를 볼 때는 아무 걱정이 없다가도 ‘자막이 올라가면’ 다시 밀물처럼 밀려드는 그것. 실컷 웃다가도 ‘광고에서 광고로 넘어가는 그 짧디짧은 시간 동안’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바로 그것. 장기하가 차마 호명하지 못하고 ‘아’라고 탄식하고 마는 그것은 우리 모두 안에 있다. 누가, 정말로, 그 탄식에서 우리를 건져내랴.

유해인 _ <Close To You>

유해인의 음악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 말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그녀의 감성이 모든 노래들마다 비처럼 스며들어 있을 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동일하게 스며든다. 물론 아주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봄이 와’와 ‘혼자 걷는 길’의 전주에서 느껴지는 김광민의 여운, 그리고‘ 그대 혼자일 때’의 전주에서 느껴지는 Sarah Mclachlan의 ‘Angel’의 그림자, 이런 옅은 흔적들은 서정적인 부분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음악이 사용하는 문법을 유해인 역시 훌륭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편성된 어쿠스틱한 연주 위에 실려 있는 그녀의 꾸밈없고 투명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살며시 감아본다. 벌써 여름이 가고 가을비가 골목 카페들의 창가로 흐르는 것 같다.



김세황 _ <The Four Seasons>

록 연주자가 클래식을, 그것도 개별 곡이 아니라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곡 전체를 연주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넥스트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던 김세황은 이번에 총 12곡으로 구성된 비발디의 ‘사계’ 협주곡 전체를 한 앨범에 담았다. 전자기타는 자신이 마치 현악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가 된 것처럼 겸손하게(?) 연주한다. 클래식을 록으로 신선하게 편곡한 앨범을 기대했
다면, 그 기대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히려 비발디라는 거장이 남겨 놓은 300년전의 음표들을 가장 현대적인 악기로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김세황의 인내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혹시 강렬한 록의 사운드가 아쉽다면 ‘여름’ 중에서 3악장 presto를 들어보라. 비발디가 이 노래를 들으면, 자신의 정서를 이렇게 잘 표현하는 악기가 세상에 탄생했음을 기뻐하며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 글 정동현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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