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가요계의 ‘청소년 유해물’들을 ‘숙정’하겠다는 기세가 뜨겁다. 비스트의 1집 수록곡 ‘비가 오는 날엔’에 담긴 가사 ‘취했나 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가 음주를 연상케 한다며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이 나왔다. 심지어 갓 데뷔한 한 아이돌의 노래에 ‘클럽’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판정이 나왔다. 오래 전 히트한 주얼리의 ‘베이비 원 모어 타임’도 ‘섹시한 눈빛과 뜨거운 몸짓에 좀 더 다가와… 이 밤을 지새울 한심한 늑대들 나를 안아 줘’라는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지적이 뒤늦게 나왔다.

출처 : MBC 홈페이지

그 때를 반복 하시렵니까
현아의 ‘버블팝’ 안무가 선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와 현아 측이 관련 활동 중지를 선언하기
도 했다. 가요계에선 카라의 엉덩이춤은 되고, 현아의 엉덩이춤은 안 되는 이유가 뭐냐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외에도 가요계를 향한 숙정의 칼날이 요즘 들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느낌이다. 경향신문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1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약 3년 동안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된 곡은 1,265곡이었다. 그런데 2009년 5월부터 현재까지 약 2년 동안 유해매체물로 지정된 곡은 모두 2,405곡이다.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이렇게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된 노래는 청소년 보호 시간대인 평일 오후 1시부터 밤 10시, 주말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모든 방송매체에서 방송이 금지되며, 음반에는 ‘19세 이하 판매 금지’ 스티커를 부착해야 한다. 21세기에 때 아닌 문화적 보수화 열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권력이 가수들을 일일이 통제했던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한국 문화사에서 그때의 풍경은 두고두고 웃음거리다. 그런 역사를 굳이 21세기에 반복할 이유가 무엇인가?

문화적 표현의 한계, 결정자는 누구?
물론 우리나라 아이돌의 스타일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쪽으로 가는 것은 맞다.
거기에 대해선 충분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권력이 직접 개입해 가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원칙적으로 문화적 표현의 영역에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론장에서 비판과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문화적 표현에 반영되는 구도로 가야 한다. 공권력은 정말 심각한 사례가 나타났을 때, 소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맞다. 공권력이 평소에 적극적으로 칼춤을 추면, 문화적 표현이 소극적으로 가게 된다. 가사 표현의 문제에도 공권력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나서면 곤란하다. 술 표현의 경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아이돌의 술 표현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미 발표된 몇몇 곡을 갑자기 문제 삼는 방식은 반드시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켜 공권력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몇몇 곡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이 아니라, 앞으로 아이돌이 그런 표현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클럽 표현을 문제 삼는 건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클럽은 대중문화 표현에서 핵심적 소재다. 아무리 기성세대가 보기에 마땅찮아도, 클럽 정도는 이제 유해매체물 판정 기준에서 아예 빼버리는 것이 맞다. 가사 표현에 나타나는 미묘한 은유적인 선정성에도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공권력이 그런 문제를 판단하면 반드시 세간의 웃음을 사고 만다. 그런 문제에 대한 판단과 비판은 공론에 맞기고, 공권력은 아주 노골적인 표현만 문제 삼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근본적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억압은 훗날의 비웃음과 반발만 초래할 뿐이다.

하재근|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 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 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쓰며 인터넷 아지트는
http://ooljiana.tistory.com 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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