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일지라도 늘 비슷한 분위기에서 비슷한 일로 만난다면, 올 여름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상황과 형편, 분위기와 때에 따라 조금씩 새롭게 발견된다. 그것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이유이며, 평생을 함께 산 부부조차 서로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 이유다. 브라운관에서 자주 만나 친근한 배우도 그렇다. 하나의 캐릭터에 몰입해 자신을 모두 보여준 듯 보인 배우였을지라도 전혀 낯설게 느껴지며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때가 온다. 마치 진흙 속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한 사람의 배우를. 11번의 새로운 만남을 거쳤지만, 아직도 궁금한 배우 성유리. 1세대 아이돌에서 이제는 여배우로 아름답게 무르익어 가고 있는 제9회 서울기독교영화제 홍보대사가 된 성유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글·정리 정미희 | 사진제공 킹콩엔터테인먼트



2002년 <나쁜 여자들>이라는 드라마로 연기를 시작하신 지, 올해로 10년이네요. 최근 드라마<로맨스 타운>으로 작품 자체의 호평은 물론 성유리 씨 연기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요. 연기하신 순금 역할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로맨스 타운>의 순금은 제게 많은 기쁨과 아픔을 안겨 준 캐릭터예요. 그 어떤 캐릭터보다 열정을 품고 연기했지만 작품이 끝난 지금까지 가장 아쉬움을 남겨 준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죠. 그만큼 많이 몰입해서 찍은 작품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 이렇게 여운이 많이 남는 걸 보면요. 순금이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는게 덥고 맵고 짜고 시고 뭐 그래서요…”라는 대사예요. 그 대사를 말하던 그 때 제 감정이 정말 그랬던 거 같아요. 그 때부터 정말 순금이로 살았던 것 같아요.

삶의 여러 과정을 지나며,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워도 지나고 보면 또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 자라난 것을 느끼게 되곤 하지요. 고된 작업 과정이셨겠지만, 지나고 보니 <로맨스 타운>을 통해 인간 성유리의 어떤 점이 성장한 것 같다고느끼시나요?
드라마 한 편을 끝내고 나면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요즘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은 인간으로서 연기자로서 정말 나의 밑바닥을 보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그 과정을 통해서 치열하게 내 자신과 부딪치고 반성하고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유쾌하다거나 행복하진 않죠. 힘들고 고된 작업임은 분명한데,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 그게 예전에도, 또 지금도, 앞으로도 제가 꼭 풀어야할 숙제인 거 같아요. 이번작품을 통해서는 그 소소한 행복을 조금이나마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너무 감사했어요.

한 인터뷰에서 ‘배우’라고 불리는 게 꿈이고, 그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아직 자신이 없다고 하셨는데요. ‘배우’는 어떠해야 한다는, 마음속 그림 같은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어떤 부분을 더 채워야 한다고 느끼시는지, 어떤 부분에 더 욕심이 나시는지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제 필모그래피에 한 작품 한 작품이 늘어날 때마다 책임감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점점 스스로 아쉬움이 커지고 부족한 부분도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감정들이 연기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하죠. 요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의 일생을 그린 영화를 많이 봤어요. 그들의 인생은 재능에 비해 많이 불운했던 걸 보면서 즐기며 연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한 번 깨달았죠. 행복한 배우가 되는 게 제꿈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연예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아주 개인적인 것조차 누리지 못한다거나 혹은 공개되거나 하는 일들이 많지요. 스스로 모든 일에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것, 누리고 싶은 것이 있을것 같은데요.
그동안 전 남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살았던 것 같아요. 정작 제 자신이 만족하는 방법은 잘 모르죠. 그래서 요즘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제가 행복해야 남들에게도 행복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 제가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에요.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해 오셨지요?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신앙의 침체기랄까, 하나님 앞에서 가장 신앙적으로 방황했던 시기가 있다면 언제였는지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신앙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항상 느껴요. 전 늘 무너지고 약해지고 고난과 역경이 오면 종종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죠. 방황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언제나 결국은… 틀림없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되죠. 그건 제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저를 지명하고 부르시는 거죠. 그걸 느낄때마다 많이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하지만 또 알면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 신앙도 성숙해지는 거겠죠? 이번 작품을 끝내고도 많이 방황했어요. 마음의 공허함이 너무 컸거든요. 내 안에 열정과 에너지는 가득한데 그걸 해소할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그 방법을 세상에서 찾으려 하니 더 공허해지고 우울해지고 외로워지고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결국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친구와 같이 새벽예배를 다니고 있어요. 기도 제목은 마음의 평온과 내려놓음이죠. 처음 연예계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함께 신앙을 키워갈 친구들이 많이 없었는데, 요즘은 예배도 많이 생기고 작은 소모임도 많이 생겨서 참 든든해요.

제9회 서울기독교영화제 홍보대사를 맡으셨습니다. 기대와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사실 이런 타이틀이 저에겐 많이 쑥스럽고 어색해요. 이번 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감사함으로 쓸 수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폐막작으로 선정된 <누나>의 주인공이시기도 한데요. 작년여름, <누나> 촬영하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맡으셨던 윤희 역할은 가족 안에 아픔을 간직한, 심리적으로 어두운 인물이었는데요. 어두운 인물을 연기하다보면 스스로 많이 다운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 영화였던 <누나> 촬영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후회가 많이 남는 작품이에요. 처음엔 작품이 좋았고 하나님을 위해 내 달란트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아 너무 기뻤죠. 하지만 정작 촬영이 들어가니 많은 시험이 찾아왔어요. 상업영화가 아니다 보니 재정적으로 많은 문제가 생겼고, 신앙의 힘으로 모인 촬영 팀 중에는 아마추어들이 많았기에 제가 지금까지 작업해왔던 환경보다 훨씬 부족한점이 많았죠. 그런 부분을 모두 예상하고 시작된 작업이었지만 세상적인 마음이 앞서 자꾸 불평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럴 거면 왜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어요. 감정적으로도 상처 많은 윤희를 연기하는 게 참 힘들었어요. 하루 종일 우울한 감정이 이어지다 보니 심적으로 부담이 컸죠. 하지만 윤희의 상처가 회복되고 치유되는 과정을 연기하며 이런 갈등이 조금씩 회복되더라고요. 이 작품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선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작품이란 걸 깨달았죠. 앞으로도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 작품이에요. 기도하면서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꾸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영화를 통해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이라는 빛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단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극중 윤희가 본인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스스로 벽을 깨고 나온 것처럼, 자신에게도 깨버려야 하는 벽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하나님 앞에서 계속적으로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이 있는지요?
세상적인 기쁨과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없어야겠죠. 나의 필요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거짓 믿음이 제가 깨어야할 벽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내려놓아야 할 제 욕심이기도 하고요.

텔레비전 속에서 그녀가 소녀에서 한 명의 여자로 성숙되어 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본 사람들은 그녀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한 명의 배우로, 한 명의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왠지 모를흐뭇함을 안겨준다.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키우던 한 그루의 나무가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열매를 선사하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기쁨을 안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누군가가 결정지우는 행복이 아닌 스스로 찾아 누리는 행복을 고민하는 그녀가 변치 않는 행복이 오는 통로를 발견하여 빛나는 때를 기다려본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그로 인해 퍼져나갈 그 밝은 빛과 좋은 향기를 기대하며.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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