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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한페이지 단편 소설

이런 앱App 어때?

커피숍에서 한 시간 째. 남자 친구와 함께 있는 건지, 스마트폰과 놀고 있는 남자 옆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연애 3년 차라 서로 궁금한 것도 별로 없고 전화로 들었던 이야기를 또 다시 하는 것도 지루하긴 하지만, 일주일 만에 만났는데 고작 이런 짓이라니...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어제 티브이에 나왔던 연예인의 이야기, 주가나 환율이야기를 하면 건성으로‘ 어’‘, 그래’ 라고 어정쩡하게 대답할 뿐이다. 남자친구가 하는 일이 스마트 폰의 앱 프로그램 개발이니까 직업적인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참아주고 있다.
“우리, 뭐 할까? 맛집이나 검색해 볼까? 새로 나온 앱이 있는데 매일 매일 반값으로 할인 받는 식당을 찾을 수있어. 우리 회사에서도 비슷한 걸 개발 중인데...”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나는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사실은 네 스마트폰을 화장실 변기에 집어넣고 싶어.’
물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식어빠진 커피를 홀짝 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휴대폰을 변기에 던져 물 내림 레버를 힘껏 누르면 과연 감쪽같이 사라질까, 무거워서 바닥에 남아 있을까? 왠지 그는 여자 화장실인데도 달려와 기겁을 할 것만 같다.
“무슨 걱정 있어?”
“아, 아니 걱정은 무슨... 회사 일은 잘 돼? 직장 상사가 바뀌어서 힘들다고 하지 않았나?”
“그럭저럭 견딜 수밖에. 너는 공부 잘 되어가?”
올해로 두 해째,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공부가 잘 되도록 바라는 것보다 운이 좋기를 바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어, 그럭저럭.”
주말이라 그런지 커피숍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일까?
“뭐 좋은 앱 개발 아이디어 없니? 요즘 과장이 계속 닦달을 해. 신입사원이 무슨 아이디어 뱅크라도 되는 줄 아나봐.”
그제서야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녀석, 어렵게 들어간 회사라고 너무 열심히 일을 하는가 보다. 그세 얼굴이 많이 안 좋아졌다. 하긴, 퇴근 시간이 내가 도서관에서 나오는 시간과 비슷하니까.
내가 말한다.
“이런 앱 어때?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앱. 카메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분석하면 어쩐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아니면 최근 보낸 문자나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고.”
“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도...불가능한 것은 아니겠네. 야, 너도 빨리 스마트폰 하나 장만해라.”
나는 남자친구의 스마트폰을 빼앗는다. 이걸 들고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버려? 그러나 나는 셀카 한 장을 찍는다. 물론 얼짱 각도로. 그리고 그에게 스마트폰을 건넨다.
“뚜, 뚜, 뚜, 분석 중입니다. 그리고 짠, 하고 나타나는 거지, 나의 마음 상태가.”
그는 피식 웃는다.
“뭐라고 적혀 있어?”
“으응?”
“앱에 뭐라고 분석이 되어 있냐고? 2.99 달러를 결재했는데 엉터리면 곤란하잖아.”
그는 내 눈치를 슬슬 살핀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한 것은 아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이게 착하지만 둔한, 나의 남자친구다.
“상대방은 배가 고픕니다?”
“틀렸어. 상대방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재미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 상대방은 굉장히 외로워집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10초
이내에 그가 나타날 거라는 것을.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으로 숫자를 헤아려 본다.
‘10...9....8.....7.....6....’
날 붙잡지 않으면 어쩌지? 라고 걱정할 무렵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서진|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일명, 한단설 1pagestory.com)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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