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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햇빛 아래 노니는 삶

우리 밭 만들기

비가 정말 끝없이 내리네요. 피해는 없으신지 걱정입니다. 이곳 율면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많은 비로 피해도 있었어요. 살고 있는 흙집은 거센 비에 대문 옆 담장이 무너져 자동차를 덮치기도 했고요. 비탈진 우리 밭 한가운데는 큰 물길이 생겨 밭이 무너지기도 했어요. 밭으로 가는 길도 비에 쓸려서 차나 경운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잎채소들은 계속되는 비에 다 녹아버리고, 호박이나 토마토, 가지 같은 과채류 등은 햇볕을 잘못 보니 빗물에 썩기만 하고 열매가 통 자라지를 않네요. 휴우... 그래도 뭐 누가 다치거나 더 큰 피해는 없었으니 다행이지요. 아이고 자자, 다들 힘드실 텐데 우는 소리는 그만하고 율면 얘기를 힘차게 시작할게요!

 

우리 밭을 만나다
밭 얘기가 나온 김에 우
리가 가꾸고 있는 우리 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저와 친구들이 가꾸고 있는 3000평짜리 밭은 농약도, 비닐도, 화학비료도 쓰지 않는 자연 그대로 밭이랍니다. 씨앗이나 모종을 심고 가끔 풀을 베어주는 것 외에 특별히 해주는 것은 없어요. 작물이 햇볕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자연스럽게 클 수 있도록 우리는 그냥 살짝 돕는 것이지요. 이 밭은 우리와 만나기 전까지 5년 이상을 아무도 쓰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어요. 땅 주인이 팔려고 내놓으셨다는데 아직 임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인 거지요. 그래서 저희가 저렴하게 그 커다란 밭을 빌렸어요. 비록 언제 새주인이 나타날지 몰라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그동안은 이런저런 농법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우리 밭이 생겼으니 무조건 기쁘고 설레었답니다. 게다가 마을의 외진 곳, 산과 이어지는 가벼운 오르막인 우리 밭은 높지 않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경치마저 끝내주지요!

우선, 힘 모아 돌부터 골라내기 처음 이밭을 얻고 우리가 한 일은 밭에 빼곡히 박힌 돌멩이들을 골라내는 일이었습니다. 으악, 정말 크고 많은 돌이 끊임없이 나오더군요. 이 큰 밭을 언제 고르게 만들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은 우리는 평소 친분이 있는 서울의‘ 하자작업장학교’라는 대안학교 친구들에게 S.O.S를 보냈어요. 너무나 고맙게도 20명이 넘는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팔을 걷고 함께 힘을 모아주었지요.
역시 사람이 많으니 신이 납니다. 깔깔대며장난치고 수다 떠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일도 후딱후딱 진행이 되니 일하는 재미도 쏠쏠했구요.“ 고지가 저기다!” 하며 영차영차 함께 일하니 힘이 나더라구요. 함께 먹는 밥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렀지만 시간은 금방 흘러갔어요. 밭 한쪽 편에는 골라낸 돌멩이들이 작은 언덕을 이루고 우리 밭에도 어느새 윤기가 나기 시작했지요. 다음 날 친구들은 온 김에 더 많이 일하겠다며 키우고 있던 모종까지 고운 밭에 심어주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친구들에게 토종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선물했어요. 친구들은 학교 앞뜰에 모종을 심어 열심히 키우고는 자라는 과정을 사진으로 보내오기도 하고,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함께 골라냈던 돌들로 밭 한가운데에 무대를 만들거나 마을에 화단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며 같이 미래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함께 땀 흘려 일한 기억과 함께 키우고 있는 채소들이 이천 율면과 서울 영등포구를 연결해주고 있어요.


작지만 소중한 것을 잊지 않기 우리는 작고 소박한, 그리고 자주적인 삶을 위해 시골의 작은 마을로 왔지만, 그 삶은 다른 세상과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을은 마을로서 충분히 독립적이고 단단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 문은 언제나 세상으로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 율면에 함께 사는 저와 우리 친구들의 신념이기도 하거든요. 자신이 있는 곳에만, 자신이 만나는 것들에만 너무 집중하거나 안주하고 있으면 나중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안에 고립되고 갇히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마을분들과 소통 못지않게, 마을 밖 세상과 소통 또한 우리에겐 아주 중요해요. 그리고 큰 도시 또한 작은 마을과 왕래하며 큰 덩치로는 볼 수 없는 것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끊임없이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은 별로 어렵지 않은 거예
요. 이 작은 마을에서 돌멩이를 함께 나르고, 같이 밥을 먹고, 새싹을 나눠 키우고, 또 자연스럽게 다음을 생각하는 것으로도 이미 시작된 거니까요.

임나은|경기도 율면에서 농부아저씨와 거나하게 한밤 지새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단하고 이쁜 젊은 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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