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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클래식/국악의 숲을 거닐다

더 깊은 관용과 더 깊은 인간애로 l 솔베이그의 노래

2011년 7월 22일,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노르웨이 테러 사건이 있었습니다. 브레이빅이라는 극우주의자가 노르웨이의 다문화 정책에 반대하여 저지른 노르웨이 사상 최악의 참사였지요. 76명이 목숨을 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참상의 처참함이 선홍빛처럼 강렬하게 남아 있는 듯합니다. 사건이 터진 다음날, TV와 인터넷에선 시시각각 테러 속보를 전했고, 라디오에선 희생자를 애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중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음악 한 곡이 지금도  제마음에 있습니다. 바로‘ 솔베이그의 노래’ Song of Solveig's라는 곡입니다. 아마도 작곡자가 노르웨이 출신인 그리그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아름다웠던 솔베이그의 선율이 그 비극의 참상과 교차되면서 묘한 비감을 더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솔베이그의 노래, 북유럽 특유의 우수와
청량함이 배어 있는 이 노래는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 1843-1907가 작곡한 페르 귄트 모음곡 Peer Gynt Suite에 나오는 노래로 클래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곡입니다. 이 페르 귄트모음곡집은 과대망상가요, 전형적 마초인페르 귄트와 그를 끝까지 사랑하는 솔베이 그의 사랑 이야기죠. 여기 나오는 패르 귄트는 자신을 향한 솔베이그의 사랑을 알면서도 쾌락에 빠져 젊음을 탕진하며 남의 신부를 빼앗기도 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은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채 노구를 이끌고 다시 솔베이그에게 돌아오는 전형적인 탕자와 같지요. 솔베이그는 그런 페르 귄트를끝까지 기다리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지고 지순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바로 솔베이그의 노래는 고향에서 물레를 돌리며 페르 귄트를 끝까지 기다리는 그녀의 사랑을 노래한 곡입니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
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기를, 오! 우리 하나님 늘 보호 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이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솔베이그의 기도를 신이 들어주셨던 것일
까요. 마침내 페르 귄트는 돌아왔고 그녀의 자장가를 들으며 그는 비로소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결말로 이 그 둘의 사랑 이야기는 막을 내리지요. 어찌 보면 한 여인의 단순한 순애보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페르 귄트 모음곡은 그러나 여전히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사랑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할까요. 마치 신약성경에 나온 돌아온 탕자와 그를 다시 사랑으로 맞아주시는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결국 사랑만이 우리가 가야할 곳임을 분명하게 들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러 며칠 후 일겁니다. 세계가 테러범의 저열함과 그 악함에 분노하고 있을 무렵, 한 소녀의 놀라운 상상력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지요.“ 한 사람이 그렇게 큰 증오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랑은 얼마나 클지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라구요. 이후 마치 화답이라고 하듯 노르웨이인들은 분노와 보복 대신 더 깊은 관용과 더 깊은 인간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가야할 길을 정말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때론 가야할 길이 어딘지 모를 때, 알면서
도 가지 못할 때가 있지요.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마도 더 깊은 인간애와 사랑의 상상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말이지요.

백광훈|따사로운 창가에서 클래식과 커피한잔을 즐길 것 같지만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열혈 애청자인 문선연의 책임연구원이자 두 아이의 아빠고 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