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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11-12 오늘, 깨어 있음

오늘, 깨어 있음 3│명랑한 세상을 꿈꾸다 - 아티스트 275c

우리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면, 세상의 잣대와 입맛이 길들인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남들과 다른 내가 존중받을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분명하고 다양한 색깔로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머리아픈 정치를 몰라도 살 수 있는 세상,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명랑한 세상을 꿈꾸는 아티스트 275c를 만났다.
신화민 · 사진 김준영, 275c(제공)

딱 ‘나’만큼만 살다
콜라주 & 패턴아티스트 275c. 이백칠십오씨가 아닌 이칠오씨의 본명은 이재호다. 학창시절 친구들끼리 이름을 숫자로 바꿔 불렀는데, 그때 생긴 이름이 275다. 좀 더 자라서는 존대하는 표현인‘ -씨c’를 붙여 275c가 되었다. 이제 그 이름은 본명보다 더 친숙하고 많이 불린다. 순수 그래픽 디자인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각종 패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전시, 패턴아트까지 콜라주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275c의 아버지는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림을 사랑하고 꽤 수준급의 그림을 그리셨다. 피는 못 속인다던가. 어릴 때부터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을, 수업 중엔 미술시간을 좋아했다. 이렇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확고히 하고 한 길만 걸었을 것만 같은 그도 어릴 땐 딱히 하고 싶었던 게 없었단다.

그의 여러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 화려함과 섞이지 않는 독특함을 느낀다.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 또한 비범한 학생을 것 같아 보였지만 그는 지극히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다들 만화에 빠져있을 때, 그가 본 만화는‘ 괴짜가족’이 유일했고 오락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옷, 신발 이런 걸 좋아했었는데, 집에서 신발 마음껏 사주고 그러진 않았어요. 갖고 싶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꼭 사야지!’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못하는 것이면 굳이 욕심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궁금한 건 반드시

그래서일까. 그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할 수 있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궁금증을 못 참는 성격이어서 매 맞을 때도, 주사 맞을 때도 맨 앞에 서서 자신이 가장 먼저 맞아야 했다. 남들 다 가기 싫어하는 군대도 너무 가고 싶어서 로망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꿈꾸던 군대에 스무살이 되자마자 들어갔다“. 제 생각보다 군대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어요. 안 좋은 걸 많이 봤지만 여러 사람 관찰하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요. 거기에 미대생인 선임이 있었는데, 군대라는 공간에서 예술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아 정말 반가웠어요. 그 선임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예술 하는 사람은 똥인지 된장인지 일단 찍어서 맛을 봐야 돼!’이 한마디가 제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제대 후 콜라주를 선택하고, 작품에 도전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죠.”
대학을 입학하며 자유를 얻었지만 그는 오히려 철저해졌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아도 그곳에서 정작 하고 싶은 것은 찾지 못했다. 그는 처음에 광고디자인이나 카피라이팅에 관심을 두었던 그가 콜라주라는 영역에 도전하고, 순수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의 길에 접어든 건 6년 전의 일이다.“ 과제 때문에 자료 찾다가 도서관에서 외국 작가의 한 작품을 만났어요. 세상에 이런 작품이 있을 수 있구나, 충격을 받았었죠. THS독일의 디자인 에이전시 Thomas Schostok의 콜라주 작품이었어요. 그때부터 THS에 대해 알기 시작하며 나의 롤 모델로 삼았죠. 그 뒤에 일러스트 과제로 콜라주를 했는데, 교수님께서 칭찬을 해주시더라구요. 그 때부터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기면서 이제는 THS가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가를 연구했다“. THS는 작품을 액자 안에만 가두지 않아요. 건물 외벽을 작품 공간으로 삼고, 전시장 자체를 예술 작업화하죠. 저도 콜라주가 액자에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더 소통하고, 더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작가는 없는 텅 빈 공간에서 그림만 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의 작품은 패턴이 되어 벽지, 포장지, 각종 가구 등으로 무한히 뻗어나갔다.
바로, 패턴아트다.

함께할 때 더 넓어지는 세계
패턴아트 작업과 함께 시작한 것은‘ yoyozine요요진’이라는 웹진이다. 여러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패턴화한 작업물을 모아 보여준다. 275c가 창간하고 처음 몇 호는 자신의 작품만 실어 발행했다. 지금도 운영은 오로지 혼자하지만 다른 이들의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독자는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입지를 줄일 수 있는 위험한 일이지 않았을까?“ 욕심이 없는건 아니에요(웃음). 예술 하는 사람들 보면 그들만의 그룹이 있고 그 그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명 Crew가있죠. 그게 정말 부러웠어요(웃음). 혼자서 작업을 하다 보니 같은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전혀 없었거든요.‘ 요요진’을 통해 평소 맘에 두었던 작가에게 자신들의 작품을 패턴으로 만들어보라고 제안하며 공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실어서 내가 비교된다거나, 나눠 가져 내 입지가 좁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함께하는 의미가 더 커요. 함께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니까요.”

간절함으로 반응하기

아무리 다양한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고 해도 큰 의미로 콜라주라는 같은 틀에서 매해 같은 것을 하는 것이 힘들 법도 하다“. 하고 싶은 걸 나중에 찾다보니까 정말 재밌어요. 회의하는 것도 즐겁고 모든 순간이 즐거워요. 매번 새로울 뿐이에요. 힘든 게 있다면 바뀌는 것이 있다면, 이미지를 보는 눈, 색, 감정도. 제 머릿속에는 무궁무진한 것이 있어서 앞으로도 매해 같은 것을 한다며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을 것 같아요.” 그의 주된 작업수단은 컴퓨터다. 그러다 보니 손으로 그림을 그린 지가 너무 오래되어 다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일단 화방에 가서 붓이랑 물감, 종이 등을 샀지만 이런저런 일에 쫓겨서 만져보지도 못했다.
한 단계씩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단 스케치부터 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그렸고, 결국 한 달 정도 걸려서 그 그림을 완성했단다.
“저도 실천 못하는 게 많아요. 생활패턴조차도 언제 일어나고, 자고, 밥 먹어야지 하지만 번번이 지키지 못하죠.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얼마나 이것을 하고 싶은 가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해요. 중요한 건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구체적인 일정을 기록하고 짜보면 훨씬 쉽죠. 현실로 만드는 데 시간을 꽤 단축할 수 있죠.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면, 조금 느릴지 몰라도 완성 되어 가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콜라주로 작업을 하듯 자신의 시간을 선택해 자신의 감각대로 맞추는 듯했다.
한 단계 한 단계 도전하며, 지루할 틈 없이 살아가는 그는 2012년도의 신명나는 계획을 이미 다 짜 놓았다.“ 패턴이 쓰일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서 작업을 하고 싶어요. 패턴이라는 것을 일상의 물건들, 공간에 입히려면 어쩔 수 없이 상업적인 것과 연결될 수밖에 없죠. 상업과 예술의 경계선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아직 의문이에요. 그렇지만 일단 도전해 보려구요. 하지 않으면 정말 모르고 끝나버리잖아요. 해 나가다 보면 상업, 예술의 경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겠죠.” 내년 1월 중순에는 전시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도약을 위해서 2011년 남은 두 달 동안은 작품에만 매진할 것이다.

돈이 되는 기준에 맞춰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아등바등하는 대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275c. 재미있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무한 애정을 쏟는 동안 세상이 그를 알아봐주었고, 그와 함께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가와 주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에게 작업거리를 주는 것이 신기하단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예전에는 예술가들을 존중해주지 않았다. 275c는 그마저 하대 받는다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과 다른 느낌이 좋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나는 얼마나 나다웠는가.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다 다리가 아파 울고 있지는 않은가. 나도 때로는, 아니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생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나의 선한 욕구에 뛰어들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