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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11-12 오늘, 깨어 있음

오늘, 깨어 있음 5│깨어 있는 삶을 기록하기 - 선한목자교회의 ‘영성일기’

 

우리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뜨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이
런저런 바쁜 일정을 보내다가, 저녁 즈음에 지친 몸을 뉘이고 눈을 감는다. 우리는 깨어 있었던 것일까. 혹시 반쯤 잠에 취한 채, 눈이 감겨 있는 것도 모른 채 하루를 보낸 것은 아닌지. 이미 눈치 챘겠지만, ‘깨어 있는 삶’은 단순히 눈을 뜨고 살아내는 하루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주님께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깨어 있는 삶’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 돌려야 할 것이다. 초점을 잃지 않고 나를 기록 하는 일을 통해 반복되는 매일을 재고해 보면 어떨까. ‘영성일기’를 통해 24시간 주님과 깨어 있는 삶을 기록하는 선한목자교회를 찾았다. 글 윤지혜·사진 김준영

24시간 깨어 있고 싶은 간절함
영성일기는‘ 일기’를 쓰는 행위와는 조금 다르다.‘ 일기’가 내가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통과했는지 돌아보는 작업이라면,‘ 영성일기’는 내가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보며 주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수련회를 가거나 기도원에 가거나 할 때에만 주님의 깊은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실제 삶에서 생생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세요.” ‘내 삶’이라는 영역에 코를 박고 살아가던 우리는, 영성일기를 통해 그냥 지나쳐 버렸던 그 분의 시선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영성일기를 쓴다는 것은 매순간 주님을 바라보고 인식하려는 하나의 움직임이다.“ 우리 교회에‘ 믿음으로 사는 형제들’이란 모임이 있어요. 이름 그대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보고 서로 나누는 모임이에요. 그 모임을 통해 삶을 나누며 모두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있죠. 믿음으로 세상을 살기가 그리 쉽지 않더라는 거예요. 나중에는 죄를 고백하는 모임처럼 되자, 제 남편이 영성일기를 제안했어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 전체에 확산되었지요.” 선한목자교회 박리부가 사모의 말이다. 그녀는 남편인 유기성 목사가 처음 제안한 영성일기 내용을 좀 더 세심하게 다듬어 교회의 여러 그룹과 나눈다. 유기성 목사는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에 언급된 필리핀 선교사 루박이 썼던 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고, 신앙 인물들의 삶을 함께 해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일기 형태의 기록은 과거 여러 인물이 자신의 삶에서 늘 깨어 있는 상태로 주님과 만나는 그 시간을 지속하기 위해 사용한 좋은 도구였다.

주님과 깊은 만남을 써내려가다
깨어 있음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당면한 삶에서 주님을 관념적인 분으로만 대해요. 주님은, 마치 내가 배우자 혹은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굉장히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분인데 말이에요. 크리스천인 우리가‘ 깨어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주님을 매순간 인식하며 그분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성일기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한 하나의 좋은 도구죠.” 우리는 빠르게 진행되는 삶의 패턴에서 중요한 것을 그저 잊어도 되는 냥 살아간다. 쉴 새도 없이 말이다.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변명을 하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주님께 초점을 두고 일기를 써가다 보면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에 맞춰지는 것을 경험해요. 말로만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던 내가, 영성일기로 내게 주어진 스물네 시간을 점검하며 주님이 매순간 나와 함께 하셨음을 깨닫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고백이 내 삶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깨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 크신 분을 경험하면 우리는 더 이상 잠들어 있을 수 없다.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듯, 주님의 영적 터치는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공주가 왕자와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 것이 분명하듯(때론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잠에서 깬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생의 구석구석을 온전히 누리는 감격을 느낀다. 그렇게 선한목자교회는 성도 대부분이 영성일기를 쓰고, 그것을 나누는 별도 웹사이트까지 만들었다. 그리곤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신앙이 빨리 뜨거워지지만 또 금방 식어 버리는 청소년 혹은 청년들에겐 자신의 그 뜨거움을 지속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아이들이 영성일기를 통해 주님의 지속적인 만지심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불같기만 했던 신앙이 다듬어지고 회복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교회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여든이 넘으신 어떤 할머님은 어렵지만 매일 영성일기를 쓰며 느끼는 감격을 이렇게 말했다고도 한다“. 하나님이랑 더 친해부렸어잉.”

넘어진 그 곳에서 다시 일어나다
아무리 멋진 결과를 낸다 하더라도 말씀이 수반되지 않는 영성일기는 텅 빈 메아리에 불과하다.“ 우선 말씀으로 내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묵상을 통해 말씀이신 주님을 만나고 영성일기를 통해 하루를 점검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임재웅 목사는 이야기한다.“ 사실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초반엔 주님과 동행한다는 기쁨보다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좌절을 더 많이 느껴요. 영성일기는 바로 이런 좌절에서 시작해요.” 잠에 취해 있는 몸을 깨우는 것은 힘들다. 좌절이 찾아왔다는 것은 깨어나고 있다는 청신호이기도 하다.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다.“ 매일 쓰는 것이 너무 중요하죠. 힘들어도 하루 동안 내게 있었던 일을 주님의 마음으로 기록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해요. 사실 영성일기의 핵심은 이거라고 봐요. 매일 빼먹지 않고 쓰는 것 말이죠.” 매일 밤 영성일기를 쓰는 것을 멈추지 말라. 어쩌면 이 말은‘ 매일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며 살라’인지도 모른다. 주님을 의식하는 순간이 점점 더 많아지면, 좌절을 넘어 환희가 찾아오는 순간이 분명히올 테니까.


서로 지탱하며 깨어 있음을 나누다
공동체는 영성일기를 쓰는 한 개인에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영성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영적인 거울이 되는 동시에 지지자가 되어 준다.“ 사실 공유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유하기 시작하면, 나중엔 오히려 감추는 게 더 거추장스럽게 되죠. 서로의 뱃속까지 알다 보니 어떤 때는 육신의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사람이 혼자이면 쓰러지기 쉽다. 공동체에서 서로 깨어 있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하나가 되어간다. 주님과 하나가 되듯 말이다. 다시 말하면‘, 깨어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깨어 있음!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삶이 능동적인 삶으로 변화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비로소 나를 경험하고 껍데기가 아닌 진실된 나를 마주대하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누리는 것! 이것은 주님이 바라는 나를 사랑하는 제일 중요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내가 그 분으로 인해 깨달은 이유와 목적으로 순간의 삶을 누리는 것! 그러다 보면 내게 주어진 시간과 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내가 지나온 삶의 자리들도 어느 것 하나 불운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깊이 잠 든 상태에서는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등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하다못해 거친 욕지거리도 듣지 못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는 고통이 나를 괴롭힐 수 있다. 감겨 있던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누리는 삶의 즐거움과 감격에 비한다면 그 정도 고통쯤이야 눈 한번 질끈 감고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