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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1-02 문화, 잔치를 벌이다

문화, 잔치를 벌이다 3│안휘석 영화제!

국내에서는 매년 110여 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열린다.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서울디지털영화제, 신디영화제, DMZ영화제, 인권영화제, 환경영화제.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화제가 각 특색에 맞게 열린다. 그런 영화제들은 꽤 즐길 만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서 나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요즘은 영화제 전성시대 아닌가! 2012년 나에게 주어진 한 해! 뭐 영화제가 별건가! 내가 만들면 되잖아! 춥다고, 혹은 덥다고! 그런 말은 블랙홀이 되어 야외 활동을 거부하는 모든 이유를 빨아들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방구석에 은둔만 하고 있을 텐가? 언제까지 빈둥빈둥 거릴 텐가? 그런데, 계속 빈둥빈둥 해도 된다. 왜냐고? 내 방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나만의 영화제를 만들면 되니까! 글 · 사진 안휘석(제 9회 기독교영화제) 


나만의 영화제를 기획하는 법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전부 다’ 적는다. 나만의 영화제를 기획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프레임에 익숙해져서 그들이 목적을 품고 제공하는 ‘무엇’에 열광하고 소비하며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소비적인 즐거움이 아닌, 내 마음이 말하는 ‘진짜’에 귀 기울여보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깊이 고민하는 것만 으로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큰 의미가 있다.

Tip 1.
1.A4 한 장을 책상에 올려놓는다.
2. 일단 아무것도 적지 말고 5분 간 종이를 째려본다.
3. 단어만 봐도 가슴이 뛸 만한 것, 생각만 해도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4. 땡! 5분이 지나면, 거침 없이 적어 내려간다.

적어 놓은 것을 보며, 그중에서 가장 가슴이 뛰는, 보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를 뽑는다. 그냥 괜찮거나 적당히 즐거운 거 말고 정말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쿵쾅 뛸 ‘무엇’, 그‘ 무엇’을 뽑아본다. 단, 세 개가 넘지 않도록 주의!
마지막으로, 뽑은 단어와 연관된 영화를 찾는다. 거짓말 조금 보태 말하자면 영화는 세상의 모든 주제를 다룬다고 소심하게 확신할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 그와 관련된 주제의 영화는 있다. 있어야 한다. 있을 것이다?
이 중 동그라미 친, 나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단어는 ‘순수미술Fine Art’과‘ 영화Movie’였다. 고로 나만의 영화제 주제는 자연스레 ‘순수미술+영화’! 좋아! 영화제의 이름까지 바로 만들어 보자. <제1회 순수미술영화제 1stFAFF(FineArtFilmFestival)>바로 이게 내가 만드는 영화제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허세 돋는 네이밍을 내 맘대로 마음껏 유치하게 붙여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하여 나만의 영화제는 1stFAFF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영화제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나, 예술가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본다. 둘, 상영이 끝나자마자 그 예술가의 작품들을 본다. 셋, 영화와 작품을 동시에 훑으며 예술작품이 주는 깊은 감화 감동을 온 몸으로 부르르 느낀다.
 
Tip2.
사실 하나의 예술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포스트모던 시대 작품으로 넘어올수록 더욱 그렇다.
하나의 작품은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가치관, 당시의 미술사조 등
어느 정도의 사전지식을 꿰고 있어야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언제 이걸 다 하고 있냐고? 귀찮은 것들은 영화감독에게 전부 넘겨 버리자.

전기 영화의 경우 수많은 고증과 자료 조사를 통해 만들어지므로 두 시간 남짓의 영화 한 편만 훑으면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한 사전 준비 끝! 자, 이제 방을 영화관으로 꾸미기만 하면 안휘석 영화제 제 1회가 시작한다. 그 이름도 당당한 순수미술영화제!


1) 개막작 소개

바스키아 Basquiat,1996
감독 : 줄리앙 슈나벨 Julian Schnabel
출연 : 데이빗 보위, 게리 올드만, 제프리 라이트

1. 예술가 소개
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1960-1988

바스키아의 삶은 그 자체로 영화다. ‘영화’를 만드는 연출가 측에서 바스키아 만큼 영화화할 수 있는 ‘꺼리’가 많은 예술가도 흔치 않다. 길거리 낙서꾼에서 뉴욕 미술계의 집중 관심을 받으며 일순간 예술계의 아이돌로 등극,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과 함께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돈벌이에 급급했던 뉴욕의 화랑은 바스키아에게 작품을 ‘생산’하도록 강요했고 결국 바스키아의 그림은 깊은 슬럼프에 빠지고 만다. 1987년 가장 의지했던 정신적 지주 앤디 워홀이 심장마비로 죽자, 이듬해 8월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한다.

2. 감상 포인트 바스키아의 생전 동료였던 줄리앙 슈나벨은 그가 보고 경험했던 바스키아를 담담하게 영상에 담아낸다. 그는 분명 희대의 천재 예술가였다. 하지만 그 역시 세상에 인정받고 싶어 하고, 마음 털어 놓을 진짜 친구 하나를 원했던 한 명의 평범한 젊은이었다.
천재 바스키아가 아닌, 평범했던 한 젊은 예술가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자. 그리고 또 하나. 데이빗 보위, 게리 올드만, 데니스 호퍼 등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한 영화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 여자! 극 중 바스키아의 연인으로 나오는 클레어 포라니Clair Forlani! 포털에 나오는 프로필 사진을 보면 깜짝 놀라겠지만, 사실 클레어 포라니는 굉장히 매력적인 마스크의 배우다. <바스키아>에서 이름을 알리곤, <조 블랙의 사랑 Meet Joe Black,1998>으로 브래드 피트의 상대역을 꿰찬다. 백합보다 밝게 빛나던 그녀는 그러나 요즘은 주로 무서운 아줌마(?)역할 밖에 안 들어오나 보다. 세월의 무상함에 마음이 짠해진다. 내 사랑 포라니!


3. 내가 뽑은 명대사 “댁의 작품도 손이 많이 간 건 아니 잖아요.” “얼만큼 손 댔느냐는 안 중요해, 얼만큼 얻느냐가 중요한 거지.”(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첫 만남. 레스토랑에서 대화)


4. 내가 뽑은 주인공의 명작품 바스키아의 초기작에 주목하자. 실제로 바스키아의 초기작들은 평가 자체가 무색할 만큼 강렬하고 원색적이며 충동적이다. 이에 반해 후기작들은 색감이 평이해지고 또 묘하게 어떤 패턴이 읽혀지기까지 해 그의 자유분방하고도 예측 불가능한 특유의 매력이 반감된다. 연대별로 작품을 훑으며 그 변화를 스스로 느껴보는 것도 중요한 관람 포인트!

5. 추천자료 장 미셸 바스키아 | 레온하르트 에머를링 저 | 김광우 역 | 마로니에북스

2) 추천작 소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
감독 : 피터 웨버Peter Webber
출연 : 콜린 퍼스, 스칼렛 요한슨


예술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그 이름 위용 찬란한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의 이름은 기본이다. 이 영화는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담긴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눈빛을 어떻게 그렸는지를 지켜보자.



팩토리걸 Factory Girl, 2006
감독 : 조지 하이켄루퍼George Hickenlooper
출연 : 시에나 밀러, 가이 피어스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의 일생을 다룬 영화. 타이즈 미니 원피스와 스모키 눈화장은 전부 다 세즈윅이 유행시킨 것! 트위기와 더불어 마른 모델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는 세즈윅보다 앤디 워홀 보는 맛이 더 쏠쏠하다. 앤디든 에디든 일타쌍피는 마찬가지!




허니와 클로버 Honey&Clover, 2006
감독 : 타카타 마사히로
출연 : 아오이 유우, 이세야 유스케


만화 원작. 일본의 한 미대, 가난한 미대생들의 이야기. 사실 스토리는 평이하다. 하지만 젊은 미대생들의 예술에 대한 무한 집중이 내 마음을 더 두근거리게 만든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배우들도 관람 포인트! 아오이 유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세야 유스케’라는 모델의 매력을 느껴 보시길!





3) 폐막작 소개

취화선 醉畵仙 2002
감독 : 임권택
출연 : 최민식, 유호정, 안성기, 김여진, 손예진


1. 예술가 소개 장승업의 일생은 여느 서양의 예술가들과 결을 달리한다. 당시 화폭에는 ‘서권기 문자향 書卷氣文字香’이라 하여 책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가 그림에 깃들어야 한다는 전통이 있었다. 글을 배운 적이 없던 천민 출신의 장승업에게 이런 문인화 전통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족쇄가 되어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천재적인 재능으로 번뜩였던 장승업은 당대의 전통 화법들을 아우러 근대 조선 회화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애주가로도 유명한데 술이 떨어지면 결코 붓을 들지 않았다 하여 영화 제목 또한 <취화선(醉畵仙,술에 취해 그림을 그리는 신선)>으로 지었다.

2. 감상 포인트 서양과는 다르게 동양화는 언제나 대상에서 느껴지는 정신적 의미를 그려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고, 이것은 결국 그림에 격이 있는지 천박한지를 결정 짓는 잣대가 된다. 붓보다 뜻이 먼저인가, 붓 하나로도 족한가. 천박한 환쟁이로 취급 받던 장승업이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가 관전 포인트! 나중에는‘내 일 획을 두고 어찌 따로 법을 말하리오’라고 건방 떨 만큼 조선에 들어와 있는 당대의 중국 화풍을 재정립한다. 생각만 해도 통쾌하지 않은가?
 

3. 주인공의 명대사 “그림은 그림 그대로 보기 좋으면 그만인 거야, 꼭 그림 안 되는 놈들이 시를 처넣고 그러는 거야! (장승업의 그림에는 뜻이 깃들지 않아 천박하다 욕하는 양반들을 뒤로하고 돌아와 술에 취해 하는 말)
 

4. 내가 뽑은 명작품 말할 것도 없이 ‘홍백매십정병(紅白梅十幀屛, 1890)’. 바람난 부인과 헤어지며 석별의 정으로 그려 준 역작이다. 일단 그 크기에 놀라고, 그 섬세한 묘사에 놀라고, 지조 있는 매화의 질감에 놀란다. 내 평생 이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볼 행운이 있을까.

5. 추천자료 홍백매십정병, 간송미술관(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97-1) │ 금시조 (저자 이문열)
 


한국에는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것 말고는 딱히 즐길 문화가 없다고 하지만, 그러나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면 인류가 만들어놓은 즐길만한 문화는 더 없이 촘촘하고 착실하다. 그저 우리가 찾으려 하지 않았을 뿐! 2012년 새해는, 맨날 어딘가에서 보여주는 것들만 보지 말고, 내가 직접 찾고 만들어서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