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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상자 펼치기 │ <해를 품은 달>과 사극의 전성시대


MBC 수목 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이 미니시리즈로서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인 40% 를 돌파했다. 놀라운 인기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은 사극이 전반에 걸쳐 강세다. 지난 연말엔 <뿌리 깊은 나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해 KBS의 대표 드라마는 사극인 <공주의 남자>였고, 방영 중인 <광개토 태왕>도 비교적 높은 인기를 꾸준히 얻고 있다. 


멜로를 품은 사극 일단 사극은 익숙하다. 중장년층 여성이 채널을 돌리다가 사극을 보면 잠시 멈춘다. <광개토 태왕>처럼 남성용 사극이면 다시 채널이 돌아가지만, 전통 멜로 스타일의 사극이면 그냥 본다. 이렇게 중장년층 여성의 시선을 잡는다면 시청률 20% 확보, 그래서 멜로 성향이 강한 사극들이 선전하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드라마보다는 스포츠 중계나 뉴스를 선호한다. 이런 남성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드라마가 바로 전쟁이나 정치를 다룬 사극이다. 그래서 <광개토 태왕>같은 정통 사극이 안정적인 인기를 얻는다. 특히 <뿌리 깊은 나무>처럼 비범한 성취를 이룬 정치 사극엔 열광적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남성의 지지만으로는 모자라다. 시청률을 크게 올리려면 여성의 지지도 받아야 한다.
<해를 품은 달>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는 전통적 멜로 스타일이면서도 권력을 놓고 암투가 벌어지는 궁의 정치를 다룬 사극이다. 여기에 젊은층을 자극할 만한 최신형 멜로 스타일이 섞였다. 기본 설정은 분명히 사극이지만 과거 역사 이야기를 본다는 구태의연한 느낌이 전혀 없다. 마치 요즘의 하이틴 순정로맨스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10~20대 젊은 여성 시청자까지 끌어들인다. 어마어마한 시청률의 비밀이다.
 
사극과 사실의 사이 대체로 요즘 사극들은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과거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퓨전 사극’이라고도 하고, ‘팩션사극’이라고도 한다. 퓨전 사극은 사극에 현대 스타일을 섞은 것을 의미하고, 팩션 사극은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 새로운 상상력을 가미한 것을 가리킨다. <해를 품은 달>의 경우는 왕 자체를 새로 만든 완전한 창작물이다.
시청자들은 이런 사극을 환영한다. 새롭고 신선하기 때문이다. 어떤 평자들은 이런 사극의 변화가 상상력의 발전을 의미한다며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극으로 역사를 학습한다. 역사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극이 역사 인식의 유일한 창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사극 속의 역사 표현이 엉망진창이라면? 사람들의 역사 인식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극이 다 역사적 사실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사극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젊은 감각이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사극과 함께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하게 만들어지는 정통 사극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통 사극의 모양새를 갖춘 <광개토 태왕>마저‘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방송사는 퓨전사극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균형 감각을 지니고 조화를 이루는 데 고민해야 하며, 막중한 책무를 지고 정통 사극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하재근| 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 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 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쓰며 인터넷 아지트는 http://ooljiana.tistory.co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