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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비뚤어질 테다

초특급 먹이사슬 에서 살아남는 법

얼마 전 ‘죠스떡볶이’ 가 네티즌에게 큰 곤욕을 치렀다. CJ 계열사라는 루머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죠스떡볶이’ 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CJ라 하면 음식뿐만 아니라 영화, 카페 등 여러 가지 사업의 중심에 있는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다. 이와 반대로 ‘ 죠스떡볶이’ 는 개인이 자신만의 맛으로 진검 승부를 펼치며 지금의 명성까지 만들어낸 노력파 프랜차이즈다. 피자, 닭에 이어 떡볶이까지 대기업이 손을 댔다는 소식은 고객이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 이면에는 제 이익 불리기에만 정신을 쏟느라 무차별하게 서민들의 생업을 짓밟는 대기업들을 향한 분노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초특급’이 문제! 
자연계에는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약한 생물일수록 개체 수가 많고 강한 생물일수록 개체 수가 적다.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듯이 모두 함께 살아남기 위함이다. 초식동물로 대표되는 약한 생물은 새끼를 많이 낳는 반면,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강한 생물은 적은 수의 새끼를 낳고 강하게 양육한다. 우리는 종종 동물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암사자가 새끼사슴을 야멸차게 잡아채는 장면을 보며 먹이사슬의 잔인함을 느낀다. 하지만 육식동물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먹이사슬 내에 존재하는 모든 초식동물을 잡아먹진 않는다. 육식동물의 수가 훨씬 적기도 하고, 이들은 한 번 배불리 먹으면 다시 배고파질 때까지 며칠을 굶는다. 말하자면, 자연계의 상도다. 이것이 공존이다.
우리는 이 ‘먹이사슬’을 감히 잔인하다 할 수 없다.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초특급 먹이사슬’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계의 먹이사슬은 ‘공존’이라는 가치 안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인간계의 초특급 먹이사슬이 추구하는 가치란 오직 ‘부’다. 강자만 살아남는다는 원칙은 자연계의 그것과 유사할 수도 있겠다. 차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단 한 마리의 죠스’가 바다 전체를 지배하며,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끊임없이 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진출한 상황이 비슷하지 않을까. 인간계의 강자인 대기업은 탄탄한 재력과 인력으로 아주 쉽고 간단하게 골목 하나하나를 삼키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각 당에서 여러 안건을 내놓고 있지만 이미 시작된 ‘죠스’의 식욕을 막기는커녕 제어라도 할 수 있을지 아니 제어할 의지는 있는 지까지 의문이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사실, ‘죠스’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웬만한 크기로는 바다 전체를 장악할 수 없다. 자꾸 몸집도 커지고 힘도 생기다 보니, 야욕을 지니게 된 것이다. 애초에 거대 상어를 만들어 ‘초특급 먹이사슬’이 생길 수 밖에 없게 한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6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시작되었다. 국민을 좀 더 잘 살게 하겠다는 명목이었다. 당시에는 이 방법이 통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부터 대기업 밀어주기 방식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좀 된다 싶은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잡아먹혔다. 사실, 지금 불거지고 있는 대기업 골목상권 진출 문제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몸에 힘이 남아도는데 어느 누가 가만히 집 안에 앉아 있겠는가? 대기업의 현 상황이 이렇다. 자금이 남아도는 바람에 이를 사용해 좀 더 이익을 끌어 모을 곳을 찾고 찾다 보니 결국은 자잘한 골목까지 자신들의 밥줄이라고 생각하고 진출한 것이란 말이다.

이미 초대형으로 성장한 죠스는 작은 물고기가 모인다 해
도 막을 길이 없다. 이 거대 상어의 힘을 빼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바다에 죠스를 풀어 기른 당사자들의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수반한 결단과 거기에서 나온 철저하고도 엄격한 시행일 것이다. 즉,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줄이는 등의 방법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는 의미다. 대기업으로 하여금 상상 이상의 여유 자금을 만들 수 있는 틈을 막고 그들의 욕망이 자라날 수 없도록 어느 정도의 제재를 단호히 실행에 옮긴다면, 그 안에서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상인 또한 살아갈 구멍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정부의‘ 보이는 손’이 움직이길 간절히 바란다. 글 윤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