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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8 03-04 다문화, 행복한 공존을 꿈꾸다

다문화, 행복한 공존을 꿈꾸다 2 | TV를 통해 본 우리 사회

 

‘다문화’의 자리

한미 FTA 논쟁처럼 국제 자본의 논리 또는 UN이 ‘순수혈통’이나 ‘단일민족’ 같은 말을 쓰지 말라고 공식 권고하는 것 같이 외부에서 밀려오는 세계화의 파도 때문에 한국 사회도 예외 없이 다문화를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내부로 시선을 좁히면 주로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의 급속한 증가에 따른 문제 그리고 ‘혼혈’ 또는 ‘코시안' 등으로 불리는 그들의 자녀들이 겪는 새로운 정체성 문제 때문에 그 대안의 키워드로 다문화를 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다문화, 소재인가 주제인가

TV를 보면 한국 사회 내부에서 빠르게 진행 중인 다문화 현상을 반영하며 여러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미녀들의 수다>, <러브 인 아시아>, <일요일이 좋다>의 한 코너인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 등. 케이블에선 <미녀들의 수다>를 패러디한 <월드보이즈> 등이 있다. 이중에서 <러브 인 아시아>와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는 주로 한국 농촌 남성과 결혼한 아시아 여성들의 가정 이야기가 중심이다. 반면 <미녀들의 수다>와 <월드보이즈>는 한국에 공부하러 온 외국 유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알다시피 <미녀들의 수다>는 외국인 젊은 여성 다수를 앉혀놓고 한국 사회의 온갖 일상문화를 접하며 생겼던 에피소드를 웃음으로 풀어 간다. 문제는 그들 각국의 ‘미녀들’과 연예인들로 구성된 한국인 젊은 남성 패널들이 짝을 이루면서(그 적극적 매개자는 바로 MC다), 섹시한 코드로 파고드는 오락적 성격에 있다. 이 오락의 활약상 덕분에 시청률이 올라가고 인기가 올라가지만, 덩달아 그 ‘미녀들’ 중 일부는 연예인이 되었지만, 세계화니 다문화니 하는 사회적 교양의 확산이라는 성격은 소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러브 인 아시아>와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에도 외국인 젊은 여성들이 나오긴 하나, 그들은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미녀들’도 아니고 ‘유학생’도 아니다. 그들은 노동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혹은 고향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돕고,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 찾아온 이주민이다. 이처럼 누가 어떤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나오느냐에 따라 TV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다문화의 모습은 달라진다. 그렇다고 <미녀들의 수다>와 <러브 인 아시아> 중에 어느 것이 더 옳으냐고 물을 수는 없다.



발상의 전환 필요한 다문화 인식

TV는 그것이 교양이나 오락 중 무엇을 표방하든, 정보보다는 이야기에, 의미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매체이다. 그 틀 안에서 우리는 TV를 통해 세계화나 다문화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일회용으로 소비한다. 그 초점은 주로 콧날을 찡하게 하거나(러브 인 아시아), 흐뭇하게 하거나(사돈 처음 뵙겠습니다), 새끈하게 바라보게 하는(미녀들의 수다) 감성적인 표현과 반응에 모아져 있다. 때문에 이들 TV 프로그램을 두고 우리 사회의 다문화를 논하는 것은 프로그램 비평이 아니라 그것을 비유와 빌미로 삼는 일이다.

그런 TV 프로그램을 빗대어 우리의 다문화 이해와 수용의 수준을 돌아보면, 기본 발상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매우 많다. 세 가지만 언급하자. 먼저, 다문화라는 개념을 상호문화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한국 문화에 동화시켜야 할 주변부 문화로 보느냐 하는 점이다. 다음은, 우리가 말하는 다문화에 과연 영미권이 아닌 아시아의 자리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끝으로 한국 사회에 와서 노동하고 세금 내며 정착하려는 아시아 젊은이들을 이 사회의 시민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정착 못하게 쫓아내야 할 ‘임시 노동력’으로 취급하느냐이다.

예컨대 이런 세 가지의 발상 전환이 어떤 수준에 가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앞으로 TV를 통해 보게 될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의 진화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교양이든 오락이든, 시청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리게 될 다문화의 풍경이 또 다른 <미녀들의 수다>로 집중될 것인지 또 다른 <러브 인 아시아>로 확장될 것인지 판가름이 날 것이다.



김종휘문화평론가. 예술과 직업의 새로운 결합을 실험하는 대안적인 문화 발전소 ‘하자센터’ 기획부장이며, 10살 어린이부터 54살 어른까지 함께 하는 예술단 ‘노리단’의 단장이다. <아내와 걸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 <내 안의 열일곱> <너 행복하니?> 등의 저자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