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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7-08 아일랜드 랩소디

아일랜드 랩소디 │ 특집 1_ 섬으로 떠나기 전 생각해봐야 할 것들


지구는 물의 행성이다.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다.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인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생명 활동을 시작한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바다, 그래서 프랑스어 어머니(mère) 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고 한자의 바다(海)에는 어머니(母)가 들어있다. 원초적 기억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기원을 암시해 준다. 연어나 은어만 모천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떠돌다 마침내 돌아가는 것은 어머니의 품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 우리가 섬으로 가는 것도 실상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한다. 행자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는 4,400여 개의 섬이 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 개, 나머지는 무인도다. 한국은 섬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뭍에 사는 사람들 중 이 나라에 그토록 많은 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섬을 잊고 살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섬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만리 먼 나라를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이다. 

우리가 섬과 멀어진 것은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에서 비롯했다. 본래 이 땅의 사람들은 좁은 육지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부터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다. 섬에 사는 것은 불법이었다. 국가가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공간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사람의 거주가 허가된 뒤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 됐다.
해양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수 거문도의 장촌 마을이나 인천 영종도 해변에서는 오수전이 다량 출토 됐다. 오수전은 기원전에 발행된 한(漢)나라 때의 화폐다. 거문도나 영종도 같은 섬들이 실상은 고대부터 국제 해상 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다. 지난 2000년에는 흑산도의 읍동 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국제해양 도시의 흔적들이 확인된 바 있다. 고려시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었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장엄한 역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섬에 대한 무관심과 육지 중심의 편협한 세계관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잘 모른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이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바다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육지를 벗어나 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이다. 바다에서 보면 대륙 또한 물위에 떠 있는 섬에 지나지 않는다. 대륙이 하나의 섬인 것처럼 아무리 작은 섬도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다. 곁에 있어도 같은 섬은 없다. 오랜 세월 섬마다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많은 섬이 사라질 것을 예감한다. 이미 많은 섬이 육지와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더 늦기 전에 섬으로 가야할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나그네는 2006년부터 한국의 유인도(500여 개)를 모두 걸어서 답사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동안 25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섬을 걸으며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기록한 것이 역사다. 사람이 살았어도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옛사람들의 이야기는 전부 기록에 남은 것뿐이다. 이 나라 많은 섬들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사람이 살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수천 년을 사람이 살았는데도 기록이 없으니 역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섬에 가서는 꼭 섬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섬의 문화와 풍속을 엿보고 와야 한다. 그저 우리끼리 즐겁게 놀고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몇 년째 걷기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 인 사람이 걷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의 회복 운동이다. 여기 저기 많은 걷기 길들이 생겼다. 하지만 섬보다 걷기 좋은 길은 없다. 섬은 그 자체로 걷기의 천국이다. 섬은 부러 돈 들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도 없다. 아직까지 대부분 섬길의 주인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로부터 안전한 섬에서는 사람이 안심하고 걸으며 사유할 수 있다. 걷기는 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바 크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 道(길 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다. 그래서 언젠가 신영복 선생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다. 나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한 길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섬에 갈 때는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 무조건 걸어야 한다. 그래야만 섬을 온전히 느끼고 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섬을 걷는 일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만드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이다. 섬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강제윤|시인,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 등단. 문화일보 선정 평화인물 100인. 2006년부터 사람 사는 한국의 모든 섬을 걷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지난 6년 동안 250여개의 섬을 걸었다. 지금도 섬들을 걸으며 섬의 문화와 풍속, 사람 사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섬학교>에서 아름다운 우리 섬 걷기 답사를 이끌고 있다. <어머니전><섬을 걷다><자발적 가난의 행복><보길도에서 온 편지>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