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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8 07-08 느림의 즐거움, 슬로푸드

느림의 즐거움, 슬로푸드 3 | 온전한 삶을 가능케 하는 슬로푸드 운동

 

현대는 빠른 속도가 지배한다. 모든 영역에서 빠른 것이 예찬되고 빠른 속도를 추구한다. 빠른 속도는 우리의 음식에도 반영되고 있다. 그것이 패스트푸드다. 보통 패스트푸드는 햄버거나 피자, 샌드위치 등 각종 인스턴트식품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우리의 먹을거리 대부분이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다. 성장 호르몬을 투입하고, 공장형 방식으로 사육되어 생산기간을 단축한 소나 돼지 등에서 나온 육고기도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다. 제철농산물이 아닌 사철농산물, 유전자 조작 농산물도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가 가져온 문제들


스트푸드는 바쁜 현대인에게 간편하고, 빠른 식사를 가능하게 하지만, 많은 문제 또한 야기하고 있다.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하여 전 국민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광우병도 패스트푸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에서 소를 빨리 키우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의 내장으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영국만이 아니라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도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 것이 광우병을 가져왔다. 패스트푸드는 환경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효율성을 강조한 공장형 집단사육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데 작용하는 분뇨와 메탄가스 등을 방출한다. 패스트푸드는 또한 비만과 식중독을 야기하고 나아가 가족 해체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간의 권리 되찾기, 슬로푸드 운동

이처럼 패스트푸드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자 이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미국의 맥도날드가 1986년에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자 현재 슬로푸드의 회장인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와 그의 동료들이 음식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의 진출에 대항하여 식사,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생겨났다.

1989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채택된 슬로푸드 선언문에서는 현대문명을 속도전쟁으로 보고, 이러한 속도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속도에 대한 강조가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을 추구해야 하며, 그 대안을 슬로푸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슬로푸드 선언문은 슬로푸드 운동이 단순히 먹을거리나 음식의 미각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슬로푸드 운동은 현재 전 세계 50여 개 국가 8만 5천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특히 패스트푸드의 제국인 미국에서도 슬로푸드 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즐거움을 누릴 권리, 생활의 리듬에 대한 존경,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해 활동한다. 또한 음식문화를 연구하고, 기술하고, 향상시키며, 어린아이들을 위한 미각 및 향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개발하고, 개별국가의 음식을 존중하면서 농산업의 유산을 보호하고 보전하는데 힘쓴다. 슬로푸드 운동은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환경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견지하면서 품질 좋은 농산물의 확산에도 힘쓴다. 음식이 인간의 건강에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음식재료의 적합한 이용을 장려하면서, 인간과 환경간의 관계를 향상시키고자 한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프로젝트

이탈리아 브라에 위치한 슬로푸드 운동 본부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각의 방주’ 프로젝트는 대규모, 표준화를 강조하여 생물다양성을 약화시키는 정책으로부터 소규모의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구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기록은 없으나 풍부한, 그리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유산인 농민 및 장인들의 복잡한 기술, 오랜 전통의 재능 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슬로푸드 프래시디아’ 프로젝트는 고품질 공예품의 경제적 상업적 미래를 구축하고, 토양침식으로부터 토지를 보존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미각의 발전을 검토하고, 고품질 생산물 보호가 환경 보호이기도한 생산의 장소에서 전통적 방식의 거래의 활성화, 관광과 교육의 촉진을 통해 새로운 직업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푸드 마스터(Master of Food)와 유럽 미각 아카데미(European Academy of Taste)를 통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각교육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속도 경쟁에서 벗어나 천천히 살기

슬로푸드 운동은 처음에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다가 1989년에 자본주의 속도문명을 문제 삼은 ‘슬로푸드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슬로푸드를 넘어 슬로라이프까지 지향하게 된다. 슬로라이프는 경쟁 대열에서의 낙오가 아니라 생활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리듬을 되찾고 인간다운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다. 슬로라이프는 개인에게 온전한 삶을 가능케 한다. 패스트라이프로 살게 되면 입시전쟁, 취업전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전투하듯이 경쟁적 삶을 살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슬로라이프를 추구하게 되면, 남에게 종속된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자기만의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으며, 배우자나 자녀와도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

슬로라이프는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속도경쟁에 빠져 있게 되면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기가 어렵다. 슬로라이프는 자신이 끌려가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선택과 자기 결정으로 살도록 한다. 나아가 슬로라이프는 지구 환경의 보전에도 기여한다. 현재 우리가 겪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 생물 다양성의 감소, 지구 환경의 파괴 등은 보다 많은 자원을 쓰며 빠른 속도에 기반을 둔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덜 바쁘게 움직인다면, 정상화된 삶을 산다면,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사용할 것이고, 그것은 지구환경의 회복에 기여하는 길이 된다.

점점 더 먹을 것이 없고,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온전하고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먹고, 제대로 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패스트푸드와 패스트라이프에서 벗어나 슬로푸드 그리고 슬로라이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필요하다.



김종덕경남대 교수. 로컬푸드 연구회 회장, 사단법인 슬로푸드 문화원 이사로 일하며, 음식교육을 통해 온전한 먹을거리와 슬로라이프의 확산에 힘쓰고 있다. <슬로푸드 슬로라이프> 책을 썼고,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로컬푸드>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