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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살림의 나날

그해 여름이 내게 준 선물

“와우! 여름이다~.” 여름만 되면 쿨의 ‘해변의 여인’이 절로 떠오르곤 했다. 그때 마다 여름이 오면 방 안에 처박혀 있는 게 무슨 대역죄인 것만 같고 당장 바다로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정작 바다로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해 여름을 겪기 전까지 내게 여름은 설렘의 계절이었다. 

1년은 만나봐야 한다던 마음을 냅다 던지고 201일 만에 결혼했다. 연애기간보다 결혼 준비 기간이 더 길었던 덕분에 나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될 준비를 채 하지 못한 채 웨딩마치를 올리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맘이 복잡할 때는 결혼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출산이라는 관문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몇 달을 회피하다 마냥 미룰 수만은 없는 나이인지라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아, 애 안 낳고 살면 안 되나? 꼭 낳아야 하나? 언제 낳아야 하나? 이러다 애가 안 생기면 어쩌나?” 온갖 생각이 들었다. 급체해도 바늘로 손 따는 게 무서워 밤새 토하고 말고, 끌려가서 점을 빼고 와서는 앞으로 누가 공짜로 성형해준대도 절대 얼굴에 손대지 않겠다고 성토하던, 나는 겁쟁이 중의 겁쟁이였다. 나이로는 엄마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자격미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가장 좋을 때 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피임을 그쳤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아이가 생겼다. 

평소 위가 좋지 않아서인지 입덧이 심했고 결국 버티지 못해 퇴사를 결심했다. 배가 나오고 태동이 시작되고서야 멈춘 입덧. 살만하다 했더니 배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바로 누울 수도 없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날 때는 바로 일어나질 못해 공처럼 데굴데굴 몸을 굴려서 일어나야 했다. 그 모든 고통 중 백미는 단연 가려움증이었다. 20킬로그램 추가된 살 덕분에 군데군데 살이 텄는데 그중 배는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터서 가려움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뱃속에 대자 수박 한 덩이를 끌어안고 고통을 느끼며 한여름을 관통하자니 출산이 절로 기다려졌다. 한 번 아프고 말지 이게 뭔 짓인가 싶었다. 물론 내 다시는 이 짓을 하나 봐라 이럼서 이를 갈기도 했다.

터질까봐 겁나는 배를 끌어안고 몇 달을 사는 동안 내 운신의 폭은 좁아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시선은 확장되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은 저만치 가는데 몸이 제자리걸음을 할 때, 어정쩡한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횡당보도를 다 건너지 못해 당황해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였다. 지하철을 타려고 역에 갔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당혹스러워할 때 전동휠체어를 끌고 역에 나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장애인이 보였다. 후에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끌고 다닐 때에는 장애인보다 더 분개하며 그분들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지지하기까지 했다. 한심스럽게 봤던 길거리의 노는 아이들에게서는 그 아이들을 잉태하고 기뻐하던 부모들이 보였다. 진작에 철들었으면 다 보고 살았을 것을 내 몸이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고통(?) 앞에서 눈이 뜨인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끝일 것 같았던 난관은 시작에 불과했고 그런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며 10년 동안 맘 편히 두 다리를 뻗고 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자주 우울해졌고 툭 튀어나온 뱃살과 잔디인형처럼 솟아나는 머리 때문에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포기하고 살기도 했다.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이름을 잃어버리고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평생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속을 끓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의 그 고통이 내게 더 따뜻한 시선을 선물해준 것처럼 출산의 고통보다 몇 배는 힘들었던 육아의 고통 역시 내게 많은 것들을 선물해주었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게 맞다.

잊을 법도 한데 여름만 되면 그 때의 시간이 자주 떠올라 맘이 아리아리하다. 올 여름엔 기필코 바다로 가서 해변의 여인이 되어 여름의 기억을 바꿔야 할까 보다. 


이경희|필명 조각목, 소싯적 옷 만들고 책 만들다 결혼 후 마님으로 살면서 음지에서 야매상담가로 맹활약 중. 바느질에 관심을 쏟다가 목 디스크 때문에 그만두고 페이스북 에서 수다 떨듯 글을 쓰다가 최근 작가와 출판전문기획자를 동시에 해보기로 결심함. 여성의전화 소식지 기획위원, 지역신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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