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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TV 상자 펼치기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의 배반



KBS주말연속극<넝쿨째 굴러 온 당신(이하 넝굴당)>은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올해를 대표하는 국민드라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특히 주부들이 주로 보는 주말드라마로서, 여성인 주부들의 입장을 속 시원히 대변하고 있다고 해서 찬사를 받았다. 이른바 ‘시월드’ 에서 억압당하는 이 땅의 여성들을 통쾌하게 해줬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색하고 살펴볼작시면,
<넝굴당>은 어렸을 때 부모를 잃어버린 방귀남(유준상)이 가족을 찾는 이야기다. 그 가족엔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딸들인 일숙이, 이숙이, 말숙이가 있다. 또 두 명의 작은 아버지가 각각 가정을 꾸리고 있다. 방귀남의 부인인 차윤희(김남주)에게도 어머니와 오빠 부부, 남동생으로 구성된 친정 가족이 있다. 
방귀남의 어머니는 평생 시어머니(방귀남의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억압받았다. 누구보다도 며느리의 설움을 잘 아는 처지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며느리인 차윤희가 생기자 시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하려 한다. 그 딸들도 차윤희에게 시누이 노릇을 한다. 반면에 아버지는 며느리의 처지를 이해하며 배려해준다. 
방귀남의 첫 번째 작은 엄마는 첫째 며느리가 아들 낳은 것을 시샘해 방귀남을 버렸다. 두 번째 작은 엄마는 사회적인 사고능력이 없으며 오로지 자기 가족만 안다. 반면에 둘째 작은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합리적 조정을 하는 캐릭터다. 
차윤희의 어머니는 딸 가진 부모로서 언제나 시댁에서 구박당하는 딸을 걱정하며, 시댁을 비난한다. 그러는 한편 자기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 한다. 이 집의 두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말리는 처지다. 
방귀남의 어머니는 차윤희에게는 그렇게 시어머니 노릇을 하더니, 막상 자기 딸이 시집을 가려 하자 이번엔 시댁을 견제하는 처지가 된다. 방귀남의 어머니와 차윤희의 어머니는 겹사돈을 맺게 되어 끊임없이 다투는 관계로 발전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야기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여성들을 거의 다 옹졸하고, 시샘이 많고, 이기적이고, 불합리한 존재로 그렸다. 반면에 남성들을 그런 여성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합리적으로 중심을 잡으며 사태의 악화를 막는 존재로 그렸다. 

통쾌하고자 시작한 왜곡과 배반
주부들의 입장을 통쾌하게 대변해준다며 여성을 위한 드라마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이렇게 철저히 반여성적인 구도였던 것이다. 여성에게 억압적인 ‘시월드’를 구성한 것은 원래 남자들이었다. 가부장이 형성한 억압적인 구조에서 여성시어머니와 시누이은 억압의 대리자에 불과했으며, 동시에 피해자였다. 그런데 <넝굴당>에선 남성들을‘ 시월드’의 억압과 아무 상관도 없는 존재로 그렸으며 여성들만 억압의 주체로 나왔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시청률이 40%를 넘나드는 국민드라마에서 여성들을 이런 식으로 그리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들은 옹졸하고, 사회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물욕이 심하고, 시기심이 많은 존재라는 편견이 강하다. 드라마는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편견을 강화하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그리하여 결국엔 여성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주부드라마가 여성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넝굴당>은 자신을 사랑해준 주부들을 배반했다.


하재근| 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 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 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쓰며 인터넷 아지트는 ooljiana.tistory.co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