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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9-10 편지, 할게요!

편지, 할게요 6│김수경이 J에게

J야, 잘 지내고 있니?
네가 교회에 나오지 않은 지 석 달이 지났구나.
네가 세례 받던 날 ‘오늘부터 예수님을 알아가겠노라’고 간증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예수 믿는다는 말조차 낯설어 ‘나도 교회 믿어요’ 라고 말할 만큼 교회 문화와 언어에 서툰 초보신자였던 네가
6개월간 실망만 거듭하다 교회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 

‘삶을 나눈다’는 미명 하에 사람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온갖 뒷담화를 나누어
널 충격으로 몰아넣은 미숙한 신앙선배들의 부주의함도,
이미 세례까지 받은 ‘잡은 물고기’니 더 챙겨주지 않아도 자력갱생하리라 생각해 너를 방치해 둔 우리의 무관심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가르쳐주기보다
신앙생활 잘하는 법이랍시고 자기계발기술처럼 금식과 기도와 헌금 생활을 가르쳐 무거운 짐만 얹었던 교회의 풍토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 더 큰 영광 돌릴 테니 교회를 잠시 쉬고 세상 스펙 쌓아 돌아오겠다고 하여
널 혼란케 한 형과 누나들의 모순적인 신앙도,
성(性)과 돈의 스캔들이 일상이 된 교계의 추악한 현실도, 다 너에게 너무나 미안할 뿐이다. 

네가 교회를 떠난다는 그 이유가 명명백백 정당하기에 더더욱 네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구나.
진정한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님을 말이 아니라 행동과 현실로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선배인 우리가 그것을 해내지 못했으니 말이야. 

그러나 J야, 이것만큼은 네가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한 가지 있어.
교회는 예수님으로 다운로드 완료된 사람들의 조직체가 아니라
한창 로딩 중인 1%에서 99%의 바(roading bar)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거야.
그 중에는 ‘죄’라는 악성코드와 ‘옛 습관’이라는 에러로 인해 로딩이 몹시 지체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운영체제를 완전히 새로 포맷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 
심지어 목회자 중에도 말이야.
이런 이들이 행한 악행과 실수들이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죄의 악성코드 체크와 영혼 상태 점검을 주기적으로 하며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만 하지.
우리가 이것을 미리 네게 가르쳐주고 손 꼭 붙잡고 함께 노력하며 달려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마음이다. 

J야, 누나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우리에게 한 번만 더 마음을 열고 기회를 주지 않을래?
너의 실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먼저 나부터 달라지기로 약속할게.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를 반영해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될게.
너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구도자들에게 하늘의 감동을 주는 크리스천이 되도록 노력할게.
네가 궁금해 하는 하나님에 대해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추기 위해 게으름을 버리고 열심히 공부할게.
사람의 영혼을 깊이 주목하고 아끼는 사람이 될게. 

아니,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사실 난 요즘 네가 뭐하고 사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혹시 다음 주에 시간 있니? 내가 맛있는 거 쏠게.
우리 만나서 밥도 먹고 사는 얘기, 하나님 얘기 한 번 진하게 나누자.
많이 보고 싶다. 내 데이트신청 받아줄 거지? 곧 전화할게. 

진심으로 너를 그리워하는 수경 누나가.



●●● 보낸이 : 김수경

24살에 첫 책을 출간한 뒤 줄기차게 글을 쓰며 살아온 글쟁이. 기독교카툰에서 뮤지컬 극작, 소설까지 계속 장르를 기웃거리며 도전하는 중.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만방에 홍보하기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가장 접근성 높은 장르이면서 본인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장르가 무얼까 늘 모색하는 사람.

●●● 받는이 : J

세상의 경쟁과 논리, 그리고 추악함에 힘들어 교회에는 하늘의 이야기, 하늘의 원리가 있을 것을 기대하고 온 레알 교회 입문자다. 정직하고 상식적인 목사, 예의바르고 수용가능한 성도를 원했던 J.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교회를 원했던 J는 그가 기대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현재 교회에 등을 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