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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살림의 나날

한 지붕 두 가족 이야기1

“응애~응애~~.”
“엉엉엉… 엉엉엉…”
“흑흑 팽 흑흑흑” 

이것은 5년 전 우리 세 모녀의 울음소리다. 그날도 배앓이 하는 둘째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었다. 저녁만 되면 배앓이 하는 둘째 때문에 전쟁이 따로 없었다. 시어머니는 항암치료 중이셨고 남편은 무릎 수술 후 입원 중이었다. 한동안 같이 있어주시던 친정엄마까지 집으로 돌아가시자 정말 혼자였다. 뱃속부터 별나던 둘째는 태어나서도 별나서 밤마다 울어대고 첫째는 그 옆에서 책 읽어주라고 조르고 떼썼다. 큰딸도 아직 아이에 불과한데 동생의 출산과 동시에 아이는 어려도 어려선 안 되는 큰딸이 되었다. 네 살이었을 뿐인데 동생에 비해 다 자란 듯 보이는 딸이 칭얼대는 게 화가 나서 한바탕 지랄을 하고 나니 미안함과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그렇게 제 설움에 젖어 아이들과 펑펑 울고 있을 때 후배네가 방문했다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후 6개월 뒤 후배네가 같은 빌라로 이사를 왔다. 나는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늘 공동체를 꿈꿨던 사람이었던지라 후배네의 이사가 너무 좋았다. 그러나 후배네는 자기들끼리 “우린 서로 친구가 없으니 같은 날에 죽어야 해”하고 말할 정도로 관계를 확장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달라도 엄청 다른 두 가정이 동상이몽을 꿈꾸며 어영부영, 설렁설렁 같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후배와 나는 청년부 목사님의 중매로 만나 하우스메이트로 살 때도 참 달랐다. 처음엔 엄청 속병을 하다 더 이상 못 살겠다! 는 외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우리는 결별을 결심하고 속을 터놓고 이야길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우리는 인생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부부 대 부부로 만났으니 또 달랐다. 무엇보다 갓난쟁이와 어린아이가 있는 우리집과 달리 후배네는 아이가 없어서 겪는 갈등이 많았다. 후배네는 주시면 낳겠지만 안 주시면 그냥 우리 딸들을 자식 삼아 살겠다고 농담하곤 했다. 
그래서 아래층 삼촌(후배 남편)은 우리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만큼 우리 아이들을 종종 부모보다 더 엄하게 대했다. 부모가 허락한 걸 삼촌이 강경하게 막아설 때면 아이들 앞에 부모의 권위가 깍이는 게 속상하고 짜증났다‘. 아니 결국 부모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뭐 삼촌이 지나!’ 이런 맘이 퐁퐁 솟곤했다. 뿐인가! 주말이면 외식이 이래저래 부담되어 집에서 별미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그럴 때면 꼭 후배네를 불렀다. 그런데 가끔 보면 후배네는 둘만 쏙 가서 맛있는 걸 먹고 오곤 했다. 음식 끝에 맘상한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섭섭했고, 배신감마저 느꼈다. 
지금이야 이해를 하지만 누군가 잉여 인력이 없으면 밖에 가서 밥 한번 먹기가 그야말로 전쟁인 상황이었던 그 시절엔 부러움이 곧 섭섭함이었다. 그 외에도 말로 풀기에도 참 유치하고 옹졸한 일들로 우리는 보이게, 보이지 않게 갈등을 종종 겪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의 속 좁고 인색하고 유치한 마음을 알아가고 이해하고 또 고백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치유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먹는 거 나눠주는 거 몹시 아까워하는 태현 씨(후배 남편)와 안 주고 안 받고 싶어 하는 성희(후배), 몹시 의욕 없고 알고 보면 인색한 남편과 뭘 나눠주면 엄청 칭찬받고 싶어 하는 나와 두 딸들이 서울에서 3년 삶에 이어 지금은 양평에서 함께 산다. 알고 보면 다 약점이 있는 우리네인데 그게 들킬까봐 더 강한 척 아닌 척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바닥을 다 들키고‘ 그래서 어쩌라고!’ 이러면서 당당하게 살고 있다. 함께 텃밭을 가꾸고 저녁이면 테이블에 앉아 하늘의 별을 보며 하루의 일을 서로 나누고 손님이 오면 서로 대접하며 말이다. 
“함께 살면 힘들지 않으세요?”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그럴 때면 나는 대답한다. 
“살면서 나 자신도 맘에 안 들어 괴로울 때가 많은데 다른 사람이 내 맘에 다 차겠어요? 힘든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아요.”
혹 당신이 지구에서 홀로 살고 있는 듯 외롭다면 누군가와 함께 살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처음에는 후회도 되겠지만 포기치 않고 더불어 살아간다면 아마도 그 삶이 당신을 구원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경희|필명 조각목, 소싯적 옷 만들고 책 만들다 결혼 후 마님으로 살면서 음지에서 야매상담가로 맹활약 중. 바느질에 관심을 쏟다가 목 디스크 때문에 그만두고 페이스북 에서 수다 떨듯 글을 쓰다가 최근 작가와 출판전문기획자를 동시에 해보기로 결심함. 여성의전화 소식지 기획위원, 지역신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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