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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동선예감

동네 이발소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를 떠나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먼 지방에 출장을 다녀오는 길, 차를 세우고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십 분. 거리에서 눈빛을 반짝이며 나와 만날 방글라인들이 떠올라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일행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도로변 먼지가 쌓인 식당 건물 뒤로 난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서니 도시의 번잡함과 삭막함이 막을 걷어내고 순식간에 인간미의 충만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가게들. 낡고 오래된 시골 극장.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각자의 소우주에서 광채를 내고 자신들의 삶을 멋지게 살고 있었습니다. 살짝 부끄러운 얼굴로 한 평 남짓한 이발소로 들어서서 카메라를 꺼내 들자 그들은 마치 오늘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그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들의 삶을 내 눈 앞에 펼쳐 보이며 멋지게 제 카메라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왔습니다. 나를 위해 며칠 전부터 리허설과 분장을 하고 조명을 설치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완벽하고도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단 십 분 동안 수백 개의 우주와 만나고 식당으로 돌아와 방글라데시의 생명과 삶이 조각하고 창조한 음식이 놓인 풍성한 테이블을 영광스럽게 맞이했습니다. 눈과 영혼을 통해 그들과 만나고, 다시 음식을 통해 이번엔 제 육신이 그들 곁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강제욱|사진작가. 전 세계의 환경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국내외의 많은 매체와 함께 일하면서 환경 문제를 널리 알리고 있으며, 9회의 개인전과 30여 회의 그룹 전시회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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