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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03-04 사 · 랑 · 영 · 화 · 제

사 · 랑 · 영 · 화 · 제 2|연극을 통해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다 - 영화 <시저 머스트 다이> & ‘행복공장’



보안이 삼엄한 로마의 한 교도소. 장기 복역 재소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극 연습에 열중한다. 무대에 올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교도소라는 갇힌 공간에 있지만,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시저와 부르투스가 되어 시공을 넘나들고, 무대 위엔 인간의 권력욕, 우정과 배신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연극이 끝나고 재소자들은 교도소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가슴 속엔 뜨거운 무언가가 자리 잡는다. 카메라는 연습부터 연극이 끝나기까지 6개월 동안 모든 과정을 담담히 지켜본다. 2012년 제62회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타비아니 형제의 다큐멘터리 <시저 머스트 다이(Caesar Must Die)>의 내용이다. 
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여기, 대한민국 재소자도 연극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심지어 재소자 자신의 이야기로 쓴 창작극이다.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런 일을, 대체 누가 하는 거냐고? 바로,‘ 행복공장’이다. 글·사진 최새롬


행복공장, 연극으로 행복의 길을 찾아가다
2009년 말, 권용석 대표가 설립한 행복공장은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한 삶의 길을 모색해가는 공간이다. 체험 교도소 시설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고 삶을 되돌아보는 ‘프리즌 스테이 Prison Stay’, 재소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재소자 사회적응 지원프로그램’, 새터민·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지구촌 나눔’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모든 프로그램에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연극이다.
행복공장과 함께 연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억압받는사람들의연극공간-해解’의 노지향 대표는 연극이라는 매체의 힘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마음을 열고, 자기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꺼내서 치유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다른 어떤 방식보다 연극이 그걸 해낼 수 있는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아주 강렬한 방식이죠.”


매주 화요일은 영등포 교도소에 가는 날

2010년 행복공장은 14명의 영등포교도소(현 남부교도소) 재소자들과 함께 상반기에는 <비행기 후진 돼? 안돼?>를, 하반기에는 <행복#반올림>이라는 연극을 각각 3개월 동안 준비해 무대에 올렸다. “형기의 3분의 2 이상을 채운 재소자 대상이었고, 자칫 선입견이 생길까 봐 대상자들의 죄명을 모르는 채로 들어갔어요. 출소하고 나서 이야기하는 도중에 알곤 했죠.”(권용석)
극단 해와 행복공장 식구까지 총 네 명이 매주 화요일마다 영등포교도소를 찾아갔다. ‘내 생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의 조각상 만들기’,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과 나와 관계 지도 그리기’ 등 시간마다 자신을 드러내고 성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보통 사람도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는데 재소자는 더 어렵지 않았을까. “노 선생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해요. 저는 재소자들과 함께 단순 참가자로 참여했으니까 다른 친구들의 반응을 다 보잖아요. 근데 굉장히 빨리 친해져요. 나중에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죠.”(권용석)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 상황을 시간마다 짧은 연극으로 만들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연습도 했다. 그중에서 공연으로 올릴 만한 이야기를 추려 살을 덧붙이니 그럴싸한 희곡 한 편이 탄생했다.



나의 이야기가 한 편의 연극이 되어
연극 연습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교도소 면회실의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연극에서 부를 주제곡을 한 소절씩 부르고 배우는 진풍경이 펼쳐질 만큼! 그렇게 재소자들은 안에서, 행복공장 식구들은 밖에서 할 수 있는 온 정성을 쏟아 연극을 준비했다. 
연극은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re)’ 형식으로 진행했다. 1975년 조나단 폭스(Jonathan Fox)에 의해 시작된 연극 형식으로, 배우와 악사가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그것을 재연하고 곡을 연주해 만들어가는‘ 즉흥극’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단 해가 최초라고. “재소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배우가 되어 공연해요. 끝나면 진행자가 관객에게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바꿔보라고 하죠. 그럼 관객이 무대로 나와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되어서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는 거죠.”(권용석) 관객은 동료 재소자들과 20명의 외부인. 무대와 객석 사이를 가릴 커튼도 없는 열악한 무대 위에서 공연했지만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관객으로 다른 재소자가 있는 걸 제일 부담스러워 해요. 유명한 걸그룹이 오지 않는 이상 집중도 안 하고 호응을 얻기가 어려운데, 자신이 겪었던 일인데다 출소하면 당장 닥칠 일로 만든 극이라 흡인력이 굉장했죠.”(노지향)


어두운 그림자에 햇빛을 비추다
연극을 통해 재소자들은 자신의 어두운 기억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기억, 어두운 힘을 그림자라고 표현해요. 압력솥처럼 꾹꾹 눌려 있는데 이런저런 방법으로 햇빛을 딱 비추고 김을 빼내면 그 힘이 약해지는 거죠.”(노지향) 자존감과 자신을 사랑할 힘도 얻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니 다른 이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는 능력은 절로 향상됐다. “자기 것에 너무 갇혀있을 때는 남의 얘기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거든요. 근데 내 것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훨씬 더 잘 듣고 공감해줄 수 있게 돼요.”(노지향)

행복공장 누리집의 한 페이지에는 히브리서 13장 3절이 쓰여 있다. ‘감옥에 갇혀 있
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도 함께 갇혀 있는 심정으로 그들을 기억하십시오.’ 5월 개봉 예정인 <시저 머스트 다이>를 꼭 기억해두길 바란다. 연극을 통해 어떻게 그들이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는지 보게 될 테니. 그리하여 자신이 갇힌 심정으로 그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행복공장이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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