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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살림의 나날

예쁘고 예쁘다, 다 예쁘다

상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다. 책 사고 어렵게 얻었던 캐릭터를 그려 놓은 상이다. 틀림없이 일명 마이너스 손 소원이 짓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손만 대면 금으로 변하는 마이더스의 손은 양반이다. 우리 둘째 딸 손은 대기만 하면 망가지는 일명 마이너스 손이다. 


언니가 곱게 잘 쓰던 머리띠도 이 아이 손에 들어가면 하루도 못 가 반으로 댕강 부러지고, 애타게 갈구해서 얻은 장
난감도 며칠이 못 가 망가진다. 언젠가는 엄마의 아이라이너로 일자 눈썹을 그렸길래 웃고 넘겼는데 나중에 보니 아이라이너는 부러져 있고 다른 화장품은 움푹 파여 있었다. 얼마 전에는 엄마의 저금통 동전을 다 꺼내 언니랑 저랑 모으는 돼지저금통에 다 옮겨놓았나 보다. 나중에 언니가 엄마 돈을 다 꺼내라고 혼을 내자-큰딸은 자기가 모은 돈에 엄마 돈 섞이는 게 싫어서 그랬단다- 둘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돼지 등짝을 부수고 동전을 꺼내놨다.


크고 작은 사고를 칠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도대체 어떻게 저런 괴력을 발휘하나 싶어 놀랍기도 하다. 생각
해보면 큰딸은 좀 얌전했다. 논리적이고 질문이 많아 정신적으로 힘들긴 했어도 혈압이 오르내리는 일은 많이 없었다. 그런데 둘째는 같은 딸인데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첫돌 전에는 까칠해서 엄마 외엔 딴 사람에게 잘 안 가서 엄마를 몹시 힘들게 하더니 두 돌이 지나서는 높은 곳에서 겁 없이 뛰어내리기를 잘해서 엄마 심장을 철렁하게 했다. 그 시절을 어떻게 잘 보냈나 싶었더니 이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 뛰어다니다 이리 쿵 저리 쿵하는 통에 얼굴이 성할 날이 없다. 유치원을 마치고 나올 때 다른 아이들은 얌전히 나오는데 우리 둘째는 입구부터 신발이며 양말을 다 던지고 맨발로 모래 놀이터를 향해 돌진한다. 맨발 행진은 지난 초겨울 학교 은행 털기 축제 날 은행 과육을 씻는 개울에서도 이어져 많은 학부모가 기함했다. 
엄마가 말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말리다 지쳐 내버려 두면, 주위 사람에게 애를 방치하는 엄마로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좋은 엄마 코스프레하자고 아이의 타고난 근성을 매번 꺾을 순 없는 법. 재산상의 손해는 있으나 누군가에게 피해주는 게 아닌 이상 이제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산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둘째아이와 같은 유치원에 보낸 학부모가 고백했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노는 걸 볼 때 저 아이가 혼자 노는 게 마음 아픈 건지, 부모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혼자 노는 거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는 것이 두려운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 엄마의 말이 너무 절절하게 와 닿았다. 내가 그랬다. 큰 아이를 키울 때 나는 늘 노심초사했다. 우리 아이가 자칫 잘못 자랄까 염려스러웠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늘 의심스러웠다. 행여 아이가 누군가의 눈에 거슬릴 행동을 하면 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어디에서든 또박또박 아이에게 바르게 훈육했다. 그 훈육은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함도 있었지만 내가 안 가르쳐서 저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리기 위함도 있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말이다.


소소한 일상과 실패 경험보다는 성공한 사례로 즐비한 책을 통해 육아를 배웠던 나는, 실패가 두려웠다. 하지만 둘째
를 낳고나니 뭔가 모를 배포가 생기더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책이 아닌 첫아이 경험을 통해 배운 육아는 엄마의 한계와 인격과 안드로메다만큼 동떨어진 우아한 육아가 아니라 내 자신의 한계와 인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불안감, 첫째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만의 것이랴. 엄마는 엄마대로 싱글은 싱글대로 다 있다. 남들에겐 어떤 그럴싸한 이유를 둘러대지만 까놓고 보면‘ 내 자신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싶어 걱정인 게 태반이지 싶다. 다시 봄이다. 언 땅이 녹고 대지에 생기가 도는 이 계절에 우리도 껴입었던 불안감의 옷을 벗어보자. 그래야 나비가 되지!


이경희|필명 조각목, 소싯적 옷 만들고 책 만들다 결혼 후 마님으로 살면서 음지에서 야매 상담가로 맹활약 중. 바느질에 관심을 쏟다가 목디스크 때문에 그만두고 페이스북 에서 수다 떨듯 글을 쓰다가 최근 작가와 출판전문기획자를 동시에 해보기로 결심함. 여성의전화 소식지 기획위원, 지역신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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