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한페이지 단편 소설

중고나라

오늘도 많이 기다리셨지요? 요즘 같이 힘든 불경기에 쓰다 버린 소울이 모여 있는 중고나라의 신상품을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5분, 딱 5분만 방송하니까 집중! 있을 때 장만해두라는 철칙, 여러분의 MD 신나라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서 제 눈에 쏘옥 들어온 신상을 소개해드리죠. 자, 첫 번째 상품은 ‘두근두근 첫사랑’입니다. 지난 4월에 구입해서 올해 8월까지 썼습니다. 몰래 혼자서만 썼기 때문에 생활 흠집만 조금 남아 있는 정도라 깨끗이 닦은 후에 쓰시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로맨스 메이커사의 제품이니 굳이 설명을 해드리지 않아도 알겠지요? 특히 처음 취미로 가볍게 해보실 분에게는 이 정도의 제품이 있을까 싶네요. 특히 몰래 짝사랑을 하고 있는 분에게는 실전 연습을 해볼 좋은 기회고, 중장년층에게는 삶의 활기를 불어넣을 절호의 찬스입니다. 이걸 마스터 한 다음에 같은 회사에서 나온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6개월, 만남에서 결혼까지’를 구입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현재는 단종이라 무료 A/S 는 받으실 수 없지만 대부분의 소울 A/S 센터에서 유료 수리가 가능합니다. 구입가는 87만 원이고 판매가는 23만 원이라고 하네요. 직거래 하시는 분에게는 별도 구매했던 메모리 카드도 드린답니다. 
두 번째 상품은 ‘산타클로즈를 믿어요’ 입니다. 요즘 영악해진 아이들이 많지요? 산타가 선물을 놔두고 갔다고 해도 도통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 몰래 장착하면 부모님이 머리맡에 놔둔 선물을 보고 깜짝! 놀랄 겁니다. 신품이 3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는데 작년부터 전시해 놓은 상품이기 때문에 2만 1천 원에 거래합니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이런 물건은 미리 사놓는 것이 좋지요. 가을만 되어도 이 제품은 눈을 씻어도 찾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자, 어린이 코너에는 ‘엄마는 킹왕짱’, ‘어둠이 무섭지 않아’ 같은 레어 아이템도 올라와 있으니 지금 즉시 체크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환불을 원하신다면 중고나라의 특별 서비스, 페이백 안전거래를 이용해보세요. 수수료, 아깝지 않아요. 불량제품 환불이 원클릭으로 해결됩니다.
마지막 상품은 ‘하이스쿨 리셋’입니다. 요즘 업데이트를 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고등학교 시절의 잊고 싶은 기억을 완전히 지워드립니다. 새로운 기억을 심으려면 ‘난장판 하이스쿨’이나 ‘도서부 선배와 러브러브’를 구입하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일단 이 상품으로 우울한 기억을 지울 수 있으니 고등학교 시절이 악몽처럼 떠오르시는 분들은 이게 딱 입니다! 취업이 안 되시는 분들, 연애에 이상 있으신 분들은 ‘프로이드 기초 심리 분석’을 먼저 접해 보시고 리셋 시리즈 중에서 적당한 걸 고르시면 됩니다. 많은 분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보다는 하이스쿨 리셋을 많이 구입하시는데요, 다 이유가 있겠지요? 흠이 조금 있는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전의 기억은 리셋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를 리셋해 버리니까 파편적인 기억이 약간 남을 뿐, 사용하시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네요.
자, 중고나라에서 오늘의 신상품을 간략하게 전해드렸구요, 저희 웹사이트에 방문하시면 더욱 많은 소울을 카테고리 별로 자세히 볼 수 있으니 방문해주세요. 지난 주 올라온 신상만 무려 156건! 아차차차,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니 특별 공동구매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분주했던 작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하시겠다구요? 걱정마세요. 2032년, 전 세계 뉴스 하이라이트를 4만 4천 원에 공동구매 중입니다. 이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고, 내일 또 다시 만나요!


서진|소설가.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하트브레이크 호텔” 한 페이지 단편소설(1pagestory.com)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LIFE > 한페이지 단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의 쓰레기는 어디로 사라질까?  (0) 2013.07.26
조립식 아빠가 생기다  (0) 2013.06.20
마지막 술잔  (0) 2013.02.06
한밤의 대리운전  (0) 2012.12.12
태풍이 온다  (0) 201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