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밥 딜런은 어디로 갔을까?ㅣ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감독_토드 헤인즈 | 출연_크리스천 베일, 케이트 블란쳇, 히스 레저, 리차드 기어


‘한 시대의 상징', ‘전설적 예술가'와 같이 부담스런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포크가수 밥 딜런은 매스 미디어가 끈질기게 추앙해온 인물 중 하나이다. 따라서 그를 형상화하는 데에는 더 많은 고민과 수고가 따른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토드 헤인즈는 그런 면에 있어서 확실히 성공적인 작품을 완성했다. <아임 낫 데어>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과거의 영화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무려 여섯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 출연하여 밥 딜런의 다양한 자아를 보여주는 구성이란 전기 영화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할 만큼 획기적이다. 대중들이 우상시했던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밥 딜런은 극 중에서 조장된 이미지와 진정한 자기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데, 그 괴리감을 극복하는 과정의 진정성이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라는 허구를 통해 여실히 폭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감탄은 바로 당혹감으로 이어진다. 실존 인물에 대한 진실과 거짓이 천연덕스럽게 공존하고, 남장 여배우가 심각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흑백과 컬러의 교차가 정신없이 이어지는데다 여섯 개의 시공간이 뒤엉켜 장장 135분 동안 돌아가는 영화, <아임 낫 데어>는 실로 이해하기 녹록치 않은 작품이다. 평론가들은 모처럼 저마다 입담을 과시하고 있지만 밥 딜런의 노래와 일생을 평범하게 추억하기 원하는 관객들에게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려운 영화라고 부러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의도보다 해석이 중요해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주체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지성이 감당하기 버겁게 느껴진다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즐기는 편이 바람직하다. 밥 딜런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영화이니만큼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듯 편하게 음악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감각적인 화면과 편집, 60년대 진풍경으로의 여행은 플롯의 난해함을 극복시키고도 남을 만한 매력을 발산한다. 밥 딜런은 우리가 이렇게 그를 기억하고 느끼는 방식, 바로 ‘여기’에 있다.



윤성은서울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 한양대학교 영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아방송예술대 등에서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