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ECIAL/2013 05-06 이 부부가 사는 법

이 부부가 사는 법 6│덜 벌고 덜 쓰며, 여전히 행복하게



울에서 버스 타고 한 시간. 시외버스라 속도가 빠른 것도 있지만, 버스에 몸을 싣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서울을 벗어나 헤이리 출판 단지에 와 있다. 조금 지나 영어 마을, 그리고 다시 마을이 보인다. 낮은 건물과 조용한 분위기. 가까운 거리도 차가 막혀서 한 시간씩 길에 시간을 버리기도 한다고 생각하니, 파주가 가깝게 느껴졌다. ‘평화롭게 방해받지 않는 시골’ 생활을 꿈꾸며 만화 사제지간에서 창작자 동료로, 이제는 부부가 된 홍연식·이민희 부부도 그런 마음으로 파주에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글 원유진·사진 제공 원유진, 이민희, 홍연식


불편하고 행복하게

홍연식은 만화가다. 몇 권의 단행본을 냈지만, 2012년에 낸 책 <불편하고 행복하게>는 이전의 작품과는 조금 다르다. ‘ 부부 소소사’라는 부제를 달 정도로, 자신의 신혼생활을 진실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일로 남으니 창작도 안 되고. 만화 그리는 것 자체가 너무 싫어졌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내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자. 아무도 안 들어주겠지만,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넋두리하듯이 풀어내다 보면 풀리지 않을까.”
결혼하고 포천 죽엽산 자락으로 이사하고 시골 생활보다는 산 생활에 가까운 일상을 살면서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히며 살아낸 이야기를 짤막한 설명 글과 사진을 담아 두 권의 만화책으로 그려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낭만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연탄불을 수없이 꺼트리며 추위와 싸우고, 산이며 동물이며 거주민까지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갈등하며, 자연이 주는 혜택을 입으면서도 자연에 압도당하는 이야기는 냉정할 정도로 여실히 현실을 보여준다.
남편은 가장(家長)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부담감에 짓눌리며 방황하다가도 텃밭을 가꿔나가며 생명이 움트고 생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며 삶 자체를 긍정하며 살아낸다. 아내는 남편의 배려에 따라 작품을 준비하며 힘든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고 힘들어하는 남편의 위로자요 뮤즈가 되어 하루를 살 힘을 주고받는다. 결국, 남편은 생계를 위한 일을 그만 두기로 하고, 아내는 준비한 작품으로 상을 받으며 그림책 작가 데뷔를 한다. 집 밖을 나선 고양이 세 마리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죽엽산을 활개치며 다니고, 텃밭 농사도 손에 익어 제법 자리를 잡아갈 때쯤,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는다. 
죽엽산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고기를 구워먹는 장면은 꽤 인상 깊다. 부부뿐만 아니라 삶을 나눴던 개와 고양이들에도 술 한 잔씩 따라주며 나누는 이야기가 큰 울림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다시 떠돌아야 하는 삶, 여운을 남기며 책을 맺은 마무리한 부부는 삶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둘, 셋, 넷 - 새로운 이야기


만화책 에필로그에 살짝 나온 것처럼, 부부는 아이를 낳았다. 이완이는 벌써 다섯 살이다. 그리고 생활에 급격한 변화가 일
어났다. “우리가 각자, 성인이고 기저귀 갈아줄 일도 없고 떼쓰고 보채지도 않고 서로의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지 일방적으로 봐줘야 하는 관계는 아니잖아요. 결혼하고 나서는 별다른 게 없었는데, 애가 생긴 이후로는 우리 가운데 애가 있고 24시간 돌봄을 원하고 나도 일하고 싶고 이 사람도 원하고요.” 순간 집중력이 좋기 때문인지 남편과 종일 함께 있는 것이 좋다는 아내와 달리 오래 고민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홍연식 작가에게 긴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생활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었다. “각자의 시간을 쟁취하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지금은 쟁취라기보다는, 애가 어느 정도 크고 보니까 키우면서 제가 아빠나 남편으로 생각하고 적어놓은 걸 보면, 나도 애가 있어서 아빠로 생각한 것이 있구나. 그냥 흘러 온 시간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책상에서 만화 그리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애를 보고 아이와 같이 텃밭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공중에 날리는 시간이 아닌 에너지로 돌아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리고 둘째인 이도를 낳았다. “각자 부모님께 기대어 태어났으니까. 둘은 낳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났으니 우리가 또 우리를 보살펴 준 존재가 있었고, 우리가 빚진 것도 있으니까요.” 
홍연식 작가는 차기작으로 ‘음식’을 다루려 준비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아이 키우며 뭘 먹고 먹여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먹거리 고민에서 그치지 않고 환경이나 사회적인 문제로 번져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라이카는 이렇게 말했다>, <별이 되고 싶어> 등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이민희 작가는 차기작 구상에 들어갔다. 만화와 그림책은 장르가 다르고 그림에도 차이가 있지만, 들여다볼수록 비슷한 느낌이 든다. 선생과 제자로 만나 홍연식 작가에게 처음 그림을 배운 까닭도 있을 것 같은데, 둘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즐거워했다. “민희 씨는 민희 씨대로 이렇게 그리라고 하면 그렇게 안 그려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그리지. 복잡한 구도가 나오면 조언을 해주죠.” 


뜻이 맞는 반려자를 만났다는 것
두 사람은 강사와 제자로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작업실 생활을 하며 서로 알아나갔다. “결혼 전, 그때 많이 다퉈보고 많이 맞춰나갔어요. ‘정말 엉뚱한 데서 이 사람이 화내는구나.’ 결혼하고 나니까 그래도 우리 부부네. 히죽 웃음이 나오고.”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대화’에 있다. “부부는 얘기를 많이 해야 해요. 상황만 보고 버럭 화내고 그러는 건, 서로 오해가 생기고 싸우게 되는 거니까.” 바라고 고민하는 것이 비슷하기에 종일 이야기를 나눠도 지겹지 않다.“ 창작자 작업을 서로 하는 건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둘 다 얽매이지 않았으니까. 같이 만화가들 성공하려고 그렇진 않잖아요. 자기 얘기를 많이 하려고 하고. 남편 친구들을 만나도 다 비슷한 만화가들이라 그 안에서 부동산 얘기하는 사람 없이 삶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완이는 그림을 그리다 블록 놀이를 하면서도 자꾸 내 간식을 챙겼다. 이도는 곤히 자고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보챈다. 홍연식, 이민희 작가는 자연스럽게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불쑥 찾아온 나조차도 천연이 섞일 만큼, 바라는 대로 부부는 소소하고도 소중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오래도록 평화롭게 방해받지 않으며, 흙을 밟고 자연과 벗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소식을 다시 만화로 접할 그날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