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는 누구나 알고 있는 민중의 노래, 자연스러운 생활의 모습과 감정이 녹아있는 우리의 정서이다. 동요, 노동요, 부녀요, 상엿소리, 굿 소리 등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이 이웃과 함께 부르기 위해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에 얹혀 오랫동안 전해져 왔다. 그 중 오랜 시간 동안 가장 사랑받아온 노래를 꼽으라면 바로 아리랑일 것이다. 정확한 아리랑의 근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분명한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구전됐고 수많은 예술 작품 속에도 녹아들어 간 우리 모두의 노래라는 것이다.
아리랑 중에서도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널리 불려 왔고 가장 오랜 기원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선 아리랑이다.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 동부지역과 남·북한강 유역에서 두루 불리던 ‘긴 아라리’, ‘자진 아라리’, ‘엮음 아라리’를 가리킨다. 이중 우리가 알고 있는 정선아리랑은 긴 아라리인데, 함께 메기고 받는 다른 아리랑 타령과는 달리 여유 있게 늘어지도록 부르는 특징이 있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서울 광나루까지 나무를 운반하던 수로에서는 떼꾼들이 늘 정선 아리랑을 흥얼거렸다고 한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하던 이 노래를 1971년 11월에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했다.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은 자그마치 3,000수에 가까운데 가장 오래된 시원으로는 고려 말~조선 초기로 올라간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고려말, 조선 창업을 반대한 7인의 충신이 정선으로 은거지를 옮기고, 왕조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여 산나물을 뜯어 먹고 살며 지은 한시를 후에 사람들이 풀어 불렀다는 설이다. 또 다른 유명한 설화는 폭우에 물이 불어 아우라지 나루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한 여랑리와 유천리, 처녀 총각의 애타는 사랑 이야기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정선 아리랑 연구소 홈페이지에서는 더 많은 아리랑 일화를 찾아볼 수 있다. 구한말에서 일본 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전승된 아리랑의 역사와 그 배경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arirang.re.kr)
교통의 발달로 떼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흐르고 있는 동강 물줄기 따라 수려한 자연경관은 변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해도 명승은 그대로이듯 다양한 음악이 홍수처럼 넘쳐나도 우리의 아라리는 예나 지금이나 강 따라 흐른다.
구구절절한 아리랑의 가사를 가슴에 묻어 두고 곡조만으로도 아리랑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연주곡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전통공연 예술 진흥재단에서는 2009년부터 우리 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외국 뮤지션들이 연주한 음반을 발매하였다. 본조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 대표적인 아리랑을 주제로 여러 장르로 편곡과 협업을 시도했으며, 아리랑을 널리 알리고 세계화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2집(2011), 3집(2012)까지 연이어 발표하였다. 이 중, 2집에 실린 정선아리랑(작곡:강상구/피아노:유키구라모토/아쟁:신현식)은 궁중음악에서만 주로 쓰였던 대아쟁으로 연주한 아리랑이라 더욱 반갑다. 대아쟁은 고려 시대부터 궁중 음악 연주에 사용됐는데 기교보다는 주로 저음역대의 지속음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대아쟁의 소리는 마치 몇 백 년 동안 숨겨왔던 기개를 단숨에 펼쳐내듯 자유롭고 담대하다. 피아노 연주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동안 아쟁의 등장은 신선처럼 여유로우면서도 첫 소절부터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한다. 깊은 농현은 애잔하고 여리게, 때로는 웅장하고 거칠게 여운을 넘나들며 아라리를 노래하고 여기에 맑고 영롱한 피아노 소리는 담백하게 어울리며 마치 눈 덮인 아우라지를 그린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정선아리랑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대아쟁의 역사도 그 맥락을 같이 하니 고려부터 조선까지 뚝심 있게 독야청청해온 두 벗, 이제야 만난 느낌이 든다.
정송희| 전통음악 창작 그룹 앙상블 시나위에서 피아노로 시나위를 연주하고 있으며, 전통음악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작은 날갯짓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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