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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07-08 산으로, 갈까?

산으로, 갈까? 3│산, 영화의 무대를 이루다 - 무주산골영화제, 1박 2일을 머물다


전라북도 무주군에는 영화관이 하나도 없다. 녹음이 짙어져 가는 여름의 문턱, 반딧불이가 사는 맑고 깨끗한 이곳에서 ‘제1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열렸다. 덕유산 자락에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 산은 그대로 영화관이 된다. 권태로운 일상에 일시정지버튼을 누르고 발걸음한 도시 사람들, 긴 낮 동안 땀 흘리고 저녁 마실 나오듯 옹기종기 자리 잡고 앉은 동네 사람들이 어우러진다. 산으로 떠나는 영화소풍이라니! 낭만의 여름밤이다. 글 · 사진 박윤지


만나니 설레다 
서울에서 3시간, 자동차를 달려 무주 IC를 빠져나가니, 차창 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골짜기로 난 길, 그 양 옆에는 덕이 많고 너그럽다는 이름 그대로 덕유산이 크고 넓은 품으로 늘어서 있었다. 구름은 높은 산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빗방울을 뿌렸다. 여름비 덕분에 산은 더 푸르러지고 나무와 흙냄새도 더욱 짙어졌다. 산과 산 사이에 무주가 있다. 
‘무주산골영화제’에 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렜다.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하는 질문만큼이나 싱겁지만 바다와 산을 비교해 보자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바다도 좋지만, 산은 더 좋다. 바다가 수평적이라면 산은 수직적이고, 바다가 정적이고 불변의 이미지라면 산은 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 이번 여행에서 산은 어떤 얼굴을 보여줄까. 구름이 한허리를 휘돌아 감고 있는 산, 묵묵히 짙어지는 산, 이것이 무주 덕유산의 첫 얼굴이었다. 우리나라 열두 명산 중 하나이며 봄에는 꽃으로 겨울에는 설경으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기도 하는 이 근사한 산에서 영화제라니! 취재 차 떠난 길에 <오늘> 팀이 동행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소풍길, 분명 특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산속에 울리다
개막식은 13일 금요일 저녁 7시, 초록빛 비단 같은 스키 슬로프가 보이는 덕유산리조트 야외 상영장에서 열렸다. 2,500여 명의 관객이 산의 얼굴을 마주하며 자리를 메울 때쯤 ‘그린카펫’으로 명사들이 입장했다. 산을 배경으로 관객들이 배우를 볼 수 있도록 동선을 짜 놓으니 사람은 산에 알맞게 어우러진다. 배우 박철민과 유다인의 사회로 막이 열렸다. 먼저, 윤복희가 나와 기타 선율에 맞추어 ‘여러분’을 부르며 첫 영화제를 축하했다. 그녀가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여, 영원한 형제여, 영원한 노래여, 영원한 기쁨이여’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 노래는 산을 타고 메아리로 돌아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한 친구이자 영원한 친구이자 영원한 기쁨 같은 산과 하나를 이루는 떨림을 주었다.
무대 뒤쪽으로 병풍 속 그림 같던 산은 시나브로 캄캄해졌다. 까만 어둠의 장막이 내려 앉은 산은 극장으로 제격이다.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는 이번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선정한 개막작. 1934년 무성영화로 만든 이 영화를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했고, <가족의 탄생>, <만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이 그만의 감각으로 새롭게 연출했다. 이 영화는 영상 외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과 제작진들은 전문가의 고증과 당시의 신문기사, 안종화 감독이 남긴 몇 줄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산속에서 보는 무성영화는 시대를 거스른 여행 같다. 배우 조희봉이 변사로 열연했는데, 가끔 과거 무성영화를 소개하는 TV 영상을 통해 듣던 변사 특유의 어조와 그 음성의 고저와 장단이 맛깔나게 살아있었다. ‘결국 우리의 영복은 또다시 운명의 패배자로 남을 것인가!’, ‘영옥은 남자의 달콤한 거짓 사랑에 속아넘어갔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하는 신파조의 대사가 관객에게 그 시절의 감성을 자극했다. 콘트라베이스, 아코디언, 바이올린, 건반으로 구성된 악단의 라이브 연주를 곁들였고, 뮤지컬 배우가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으로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연출한 점이 돋보였다. 관객들은 이따금 내리는 부슬비에도 때론 박수를, 때론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지켰다. 무주 산골에서, 1930년대 흑백의 무성영화는 안성맞춤이었다! 산골 영화제 첫날은 그렇게 캄캄한 산의 어둠 안으로 깊숙히 안겼다.



자연 영화 사람, 
모두 어울리다
올해 처음 발을 내딛는 무주산골영화제에는 닷새 동안 친구, 연인, 가족 등 함께 나들이를 나온 관객들로 가득했다. ‘창, 판, 락, 숲, 길’과 ‘명품 다큐영화 스페셜, 무주반디극장’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한국고전영화, 가족영화, 애니메이션, 음악영화 등을 적절히 버무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수풀이 우거진 캠핑장에서 온가족이 둘러 앉아 동화 같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영상을 만나는 일은 싱그럽고 환상적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특별히 무주군 내 면 단위의 주민들과 문화 소외 계층을 위한 이동 상영관을 마련했는데, 산이 다양한 생명들을 넉넉하고 자유롭게 품듯, 평소에 영화를 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영화의 장을 만들어 더 큰 울림이자 어울림을 만들었다. 
하얀 평면 위에서 또다른 시공간으로 여행이자,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을 깨우는 것, 이것은 영화의 매력이다. 그리고 ‘나’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구름과 바람과 나무가 살아있는 산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이것은 산의 매력이다. 자연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접점에 무주산골영화제가 있었다.



꼬박 24시간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산골에서 열린 영화제는 특별한 영화 감상이라는 즐거움과 함께 단지 영화를 보고 듣는 것을 넘어 감각이 깨어나는 쾌감을 안겨 주었다. 산내음에 온 몸을 씻고, 혀끝으로 구름을 맛보고, 우연히 청솔모와 눈이 마주쳤을 때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올해 개최한 무주산골영화제가 잘 정착되어 여름 산 영화 소풍을 기대하는 사람들 곁에 오래도록 함께 해주길 바란다.



무주산골영화제 정보

전북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 1로 159 
국립공원관리공단 덕유산사무소(063)322-3174
deogyu.
knps.or.kr

• 교통 : 버스로는, 서울 남부터미널 무주행 버스 승차 - 무주터미널 도착(3시간) - 구천동행 버스 승차 - 공주차장 하차(40분) : 첫차 08:30 막차 14:35 (5회 운행) - 덕유산 야영장매표소 인근. 
기차로는, 대전역(2시간, KTX 50분)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10분) - 무주행 버스 승차(1시간) -  무주터미널에서 안성행 버스승차(15분) - 안성터미널에서 사무소까지 택시로 이동(10분) - 덕유산 야영장매표소 인근.

• 거리 : 향적봉 등산코스. 구천동탐방지원센터에서 구천동 33경을 따라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탐방코스(편도 8.5km, 3시간) 또는 무주덕유산리조트에서 곤도라를 타고 향적봉에 오르는 방법도 있다. 20분 만에 해발 1,614m 구름 속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밖에 무주반디랜드, 머루와인동굴 등이있으며, 구천동계곡은 트레킹 코스로도 좋다.

• 먹거리 : 구천동계곡 입구에 있는 전주회관 또는 전주 일미식당의 더덕구이가 유명하다. 남대천 근처 ‘섬마을’이나 ‘금강식당’에서 빠가사리 어죽도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