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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07-08 산으로, 갈까?

산으로, 갈까? 6 │사람 사는 산, 산을 닮은 사람들 - 산골초가 민박


이번 여름에는 산에 가기로 했답니다. 오목한 그릇에 가득 부어 우유에 말아 먹는 콘플레이크처럼 바다나 워터파크에 둥둥 떠다닐 모습을 생각하니 순간, 없던 현기증이 생기는 것 같아서요. 그늘에 누우면 졸졸졸 물소리도 나고 바람 불면 솨솨 나뭇잎들이 파도치는 산으로 가자 생각했지요. 잘 닦아 놓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국도로 들어서니 햇살을 받아 한층 더 푸르른 산 사이사이 한가로운 조각 구름이 손짓하는, 참 좋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또 한참 크게 굽이친 길을 달려 차츰 인적이 드문 산길을 오르다 보니 왠지 이 길 끝에 분명히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만 알았으면 싶은 그런 비밀의 장소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박하나·사진 김준영


첩첩산중에 초가집 지어 살기
초가집이었어요. 네- 정말이요! 주차하고 올려다보니 웅장하게 둘러 서 있는 산 아래 지푸라기 지붕에서 밥 냄새가 고소하게 풍길 것 같은 초가가 곳곳에 머리 내밀고 있었습니다. 눈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사진을 찍고 로봇이 대신 청소도 해주는 요즘 같은 최첨단 시대에 초가라니, 초가집이라니! 오목한 산 아래 다섯 개의 초가 사이에는 허리까지 오는 만개한 작약과 너도나도 피어있는 노오란 들국화가 심겨 있고, 정감 넘치는 흙길을 따라 공들여 지은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오두막과 시원하게 돌아가는 물레방아도 있더라고요. 이 첩첩산중 초가집의 아무도 못 말리는 주인 부부는 5년 전 이곳에 들어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집 짓는 데만 몰두했답니다. 작년 가을쯤부터야 비로소 하늘 한 번씩 볼 여유가 생기셨다네요. “첫해에 마을 어르신한티 용마름 만드는 방법을 배웠는디 그다음 해에 까먹어 버려서 또 찾아가 귀찮게 하고 그랬으. 그렇게 두 번을 더 가 배웠는디 그다음 해는 못 배워. 왠줄 알아요? 글쎄, 그 냥반이 병원에 입원을 해버리셔. 아이고야. 만들어 놓은 용마름을 다시 풀러 만들어보고 그랬더니 그제서 이게 안 까먹어지대.” 괜히 동네 물 흐리고 갈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시던 동네 어르신도 계셨었는데 때에 맞춰 이 밭에 콩 심고 저 밭에 감자 심으러 다니며, 새참이랑 냉커피 해 날랐더니 드디어 2년 만에(!) 완벽한 동네 사람으로 인정받았답니다. 둘이서 잘 살자 들어왔는데 어느새 정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된 거죠. 


부부가 산으로 간 까닭은

산에 살기 시작한 건 추위가 절정에 닿는 2월. 전기도 수도도 없이 굳은 땅이 녹기를 기다리며 10개월을 매일 밤 눈물로 지새웠지만 못 살겠다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데, 부부에게 그렇게도 산이 좋은 건 매일의 풍경이 새롭기 때문이랍니다. “굳이 바다보다 산이 좋은 이유를 대자믄, 바다는 뭐랄까. 굉장히 허허롭다 할까? 너무 크고 웅장혀. 근디 산은 아기자기하잖여. 물이 한 데 많이 있는 것보다 졸졸졸 흘러가는 게 귀엽고, 요렇-게 가만 들여다보면 언제 심긴지도 모르게 풀잎 하나 올라와 있고. 그냥 그런 게 좋은겨.” 바라만 봐도 좋은 산하고 연애하느라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무지 바쁘시대요. 산속에서 산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참말로 많아서 마치 사귄 지 5년이 되어도 여전한 커플처럼, 오랜 시간 겪으며 모르는 것 없이 익숙해졌다 생각했어도 때때로 서로의 차이에 낯섦을 느끼며 관계를 지어가듯이 이 두 분, 산과 그렇고 그런 사이구나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불편한 산 생활, 혹시 힘들 것 같아 여쭸더니 “전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뭐가 힘들어요. 또 힘든 일이 있다 해도 그걸 힘들다 생각하지 않아요.” 하십니다. 암요. 누구 좋아하면 그렇잖아요. 호호.


살아있네, 살아있어. 산, 산, 산, 산!
“여기 꽃 심는데 뭐 꽃 공부를 따로 했던 게 아니라. 그냥 물어봤어요. 근디 요것들이 대답을 안 혀. 지금까지도 계속 물어보는 애들이 있어요. 근디 또 말을 안 해. 그런데 진짜 어느 날엔가는 대답을 해. 나 이렇게 생겼거든? 하면서. 나무 같은 것도 올해는 얘 가지를 여기서 치나? 근데 아니었어. 그럼 내가 틀린 거지. 그래서 그다음 해엔 다른 데를 쳐. 그러다 어느 때 나랑 걔(나무)랑 마음이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 아, 그럼 기분 좋지.” 산에 오기 전에는 개나리, 진달래밖에 모르던 마님도 이제는 이 꽃 저 꽃 만져주고 말 시키느라 해 떨어지고 한참 지나서야 집에 들어가시는게 일이랍니다. 따뜻하고 정직한 주인아저씨는 초가를 짓는 동안 굴착기 한 번 안 쓰고 오로지 맨몸으로 일궜대요. 작은 화분을 커다란 화분에 옮겨 심듯이 필요한 흙만 조금 파내고 숲 속에 쓰러져 있는 소나무 가져다 부지런히도 지었답니다. 부부가 어쩜 이리도 닮았는지. 산 아래 작은 꽃도 나보다 조금 큰 나무도 말 못하는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안 했던 것 같아요. 주인아저씨는 왕년에 암벽을 좀 타셨다는데 이제는 안 하신대요. 당시에 쓰던 자일이나 로프 같은 장비는 초가에 지붕 올릴 때 쓴대요. 더는 안 하느냐 여쭸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지금 생활을 시작하신 후로 굳이 거기에 가지 않아도 느끼는 게 있어서랍니다. 산이 주던 묘한 도전감과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려 느끼는 존재의 유한함. 뭐 이런 게 아니더라도 후-하, 후-하. 숨 쉬는 산, 그 안에서 호흡하며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생명. 그 자체요.

어디를 가든 셀카찍는 걸 좋아하지만 산골초가에 간 이날은 얼굴보다 하늘, 산, 꽃, 초가 풍경 많이 찍고 왔습니다. 산에게서 엿본 사람의 흔적과 사람에게서 느낀 산의 모습. 돌아서는 길 아쉬웠어도, 언제든 가면 여전히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어 고마웠습니다. 


산골초가 민박

강원도 영월군 북면 공기리 48번지
010-6299-0395(오경순)
sangolchoga.com




교통 : 버스로는, 영월 시외버스터미널 길 건너 김약국 앞   에서 번
호 없는 공기리 행 마을버스 탑승
  마을버스_오후 3시 10분, 6시 
10분 두 번 운행, 하차 시간     에 맞춰 픽업 요청(무료) 
  기차로는, 올 경우 영월역, 버스로 올 경우 영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픽업(비용은 만 원. 예약 시 미리 지불) .

먹거리 : 산골초가 안방마님이 각 방 냉장고에 채워두신   제철 반찬,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텃밭에서 직접 따 먹는     채소, 직접 키운 닭 바로 잡아 푹푹 끓인 백숙(3만 5천 원,   백숙을 먹으려면 마늘 가져가야 함). 
  주인 내외분 점심 드실 때 기웃거리면 맛의 차원이 다른 
  쥐눈이 콩국수를 맛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