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에 허덕이던 세대가 아님에도, 일주일 점심을 멀리한 채 남긴 용돈으로 서울까지 두 시간을 넘겨 영화를 쫓아다니던 철없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마냥 영화를 고파하던 시절의 중심부에 다이어리 속 네잎 클로버처럼 조용히 내 심장에 끼워진 영화가 있었으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이다.
포스터 속 주인공의 눈망울이 보여주듯 진한 사람 내음이 나고 따뜻함이 듬뿍 묻어나는 이 영화는 지난 십년이 넘도록 목록의 맨 앞자리에 놓인 내 인생의 영화다. 영화는 어린 주인공 아마드가 친구의 공책을 실수로 집까지 가지고 오게 되고, 학교에서 있었던 선생님의 엄포를 떠올리며 그 친구의 집을 찾아다니는, 조금은 답답하고도 우스꽝스럽고 애틋한 하루 동안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허나, 그 단순함이 이 영화의 생명이자, 다른 요소들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힘이 된다. 이란의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직접 뽑은 현지 아이들의 절대 순수 연기, 만들어내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과 삶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낸 영상 감각, 요란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라스트신의 감동….
무엇보다 이 영화는 ‘대사 없음의 미학’으로 ‘소통’을 말하고 싶어 한다. 그나마 잠시 이루어지는 몇몇의 대화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일방적 통보와 의무적 반응뿐인데, 아이들의 말은 늘 먼지 속으로 파묻히고 만다. 흡사 쉴 새 없이 대화하지만, 여전히 서로 앞에 놓인 두꺼운 벽 앞에서 ‘소통’을 목말라 하는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 되며 다가온다.
수많은 화학비료와 조미료로 가공된 영화들 속에서 이 영화는 ‘이단적 유기농’작품이다. 그곳엔 다시금 돌아가고픈 세계가 있고, 아직도 인간에게 소망을 품게 하는 한줄기 빛이 있다. 가끔 사람이 미워질 땐 이 영화가 그리워진다. 그런데, 도대체 친구 집은 어디?
박주철|어릴 적 인간이 두려워 어른 되기를 싫어하다가 한 때 인간을 더 알고자 문학도가 되기도 했었음. 현재는 바다 바깥에서 뒤늦게 영어와 씨름하며 여전히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욱 친밀히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비와 영화를 사랑하는 젊은 자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