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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살림의 나날

20점짜리 수학 시험지

“어머니, 이 아이는 조금만 받쳐주면 잘할 수 있는데 왜 욕심을 안 부리세요?”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외에 딱히 공부라는 걸 한 적이 없는 아이가, 어느 날 동네 언니가 하는 구몬학습이 부러웠는지 자기도 하겠다고 했다. 입학 전에 애를 뭘 시키나 싶어 버티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한참 뒤에 그러마 했다. 수학 한 과목을 했는데 몇 달 가르쳐본 선생님이 다른 과목도 제안을 하셨다. 하지만 하나 하는 것도 마뜩찮은 판에 더 하라니 귀에 들어왔겠는가. 선생님께 그럴 의사가 없음을 밝혔을 때 선생님이 내게 한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아이에게 욕심을 안 부리냐는 말보다는 ‘오호! 우리 아이가 좀 똑똑하단 말이지’하는 마음에 솔직히 좀 기뻤다. 조금만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건 안 시켜도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는 아이란 말 아닌가! 한동안 구몬학습을 하던 아이는 마음이 시들해져 그만두길 원했고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학교에 들어가자 아이와 엄마는 학교에서 매일 내주는 숙제도 귀찮고 버거웠다. 그러다 시골 분교로 전학했다. 물론 숙제가 버거워서 온 건 아니다. 전학을 왔더니 여유로운 분위기가 참 맘에 들었다. 숙제 따위는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있다 해도 안 해도 될 것 같은 이 자유로운 공기! 
시골로 와서 신나게 1학년 말과 2학년을 보내고 3학년이 되었다. 몰랐는데 학교에서 단원 평가라는 걸 했다. 아니, 했던가 보다. 서울서 엄마들이 단원 평가를 한다 하면 문제집을 풀게 하고 애를 잡고 하는 걸 보긴 했지만, 여기 와서 너무 해이해진 엄마는 아이가 단원 평가를 보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선생님이 틀린 문제를 숙제로 내주시면서 사인을 받아오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선 그런 게 없는 줄로만 알고 살았을 거다. 
아이가 생전 처음 시험지를 들고 왔다.
20점!


일을 하고 늦게 돌아온 날이었다. 남편이 먼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온유함의 지존인 남편이 큰아이를 붙들고 공부를 시키고 있었는데 머리에 김이 폴폴 나는 게 보였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 대학을 꼭 갈 필요는 없다는 위인이었다. 물론 나는 가는 게 좋다는 현실주의자이지만….

그런데 그 이상주의자 남편이 딸 아이의 20점 시험지 앞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게 보였다. 어쩌면 20점에 무너져 내렸다기보다는 아이가 학업에 이렇게까지 지진한 지를 미처 몰랐던 자신에 대한 실망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입학도 하기 전에 판정받은 똑똑한 아이일 거라는 기대감은 20점짜리 시험지 앞에서 황당함으로 변하고 말았다. 
사실, 아이가 무얼 배우는지도 몰랐던 엄마는 그날 당장 SNS 상의 선배님들을 통해 문제집에 대한 정보를 얻어 다음 날 바로 문제집 하나를 구입을 했다. 그리고 서울서 한다는 한두 학년 선행학습은커녕 3학년에서 처음 배운 수학 문제부터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최근 몹시 애정을 품은 서천석 소아정신과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많은 부모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결과에 반응한다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이가 입학할 때 다짐한 것 중 하나가 시험 점수에 절대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대신 시험 전 공부하는 아이를 격려하고 열심히 했을 때 미리 상을 주신다고 했다. 선행을 하네, 사교육을 하네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올 때 솔직히 그들의 유별스러움을 조롱하기만 했지 내 아이에게 다른 방식의 관심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말 그대로 방관이었다. 과정에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면서 사실 마음으로는 “우리 딸은 잘 할 거야. 똑똑하니까” 생각했다. 

과정에 공들이지 않고 결과만 기대한 일이 아이의 수학 점수뿐이었을까. 나는 매순간 요행을 바라고 내가 
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며 지금까지 살았다. 하지만 주신 인생을 살아갈 때 내가 바라봐야 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아이를 통해 배운다. 나는 아이에게 배우고, 아이는 과정을 사는 부모에게서 바른 삶을 배우리라. 이렇게 삶은 돌고 도는가 보다.


이경희|필명 조각목, 소싯적 옷 만들고 책 만들다 결혼 후 마님으로 살면서 음지에서 야매 상담가로 맹활약 중. 바느질에 관심을 쏟다가 목 디스크 때문에 그만두고 페이스북에서 수다 떨듯 글을 쓰다가 최근 작가와 출판전문기획자를 동시에 해보기로 결심함. 여성의전화 소식지 기획위원, 지역신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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