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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비뚤어질 테다

국사 필수과목 선정의 현실

지난 5월에 방송된 <무한도전> ‘TV 특강-한국사’ 편을 보셨나요?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사 장학퀴즈에서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요. 이 장면만으로 청소년 역사의식의 커다란 구멍을 짚어낸다면 너무 일부에 국한한 평가가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실은 요즘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무한도전> 방송 다음날, 시청자들은 “국가가 버린 미래, 예능이 살렸다”며 목소리를 높였지요. 


어른들이 만든 교육 과정 탓에 미래 세대의 주역인 청소
년은 점점 역사와 담을 쌓고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국사란 매일 외우는 영어 단어보다도 지루하고 어려운 것이죠. 그러다 보니 청소년 사이에서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ilbe.com)’와 같은 사이트에서는 국사를 자극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변질시켜 우스운 이야깃거리로 만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일컫는 ‘운지’라는 단어나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에 대해 ‘홍어를 널어 말린다’ 등의 표현을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것이죠. 진지한 배움을 통해 역사의식을 형성하기도 전에, 청소년은 일부 언론의 편향된 관점에서 형성된 역사 해석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합니다.


“국사가 무슨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이야!”
개그 프로
그램에까지 이런 대사가 등장한 이유는 뭘까요? 2005년 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탐구가 ‘선택형’으로 바뀌며 한국사, 근현대사는 선택과목이 되었습니다. 서울대를 지원하는 학생 외엔 국사를 선택하지 않았고, 이는 수능 사탐 과목 중 국사 선택 비율이 2005학년도 27.7%에서 2012학년도 6.9%로 급격히 줄어드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2009학년부터는 교육과정에서 한국사가 선택과목으로 전락하고 근현대사는 폐지됐습니다. 그야말로 ‘선택’의 여지가 생기니, 분량도 많고 암기가 힘든 한국사는 으레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죠. 수박 겉핥기식으로 국사를 배웠는데, 이제는 아예 수박 구경도 어려워진 셈입니다. 최근에는 사회탐구 영역에서 유일하게 국사 지정을 필수로 요구했던 서울대마저도 2015학년도부터 국사 의무화를 폐지한다는 발표를 했다가 재고의 여지가 있다며 말을 뒤집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학교에선 ‘집중이수제’ 방식으로 한 학기 내에 한국의 오천 년 역사를 배웁니다. ‘학생 학습 부담 완화와 교과수업 효율성 제고’를 위한 방안이라고는 하나, 학생 입장에선 국사를 시험을 보기 위한 암기 과목 정도로 인식하게 마련입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국사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흐름 속에 뼈아픈 우리 민족의 역사와 관련된 배경 지식이 거의 없거나 편향성을 보입니다. 그리고는 자신과 사회가 맞닥뜨린 사회, 정치적 현안에 대해 무관심한 성인이 되어 버립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사를 ‘몰라도 되는 것’, ‘자기와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습득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앞서 말했던 ‘일베’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소위 ‘일베충’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기초 교육을 책임져야 할 학교에서 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서, 편향된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에 익숙한 청소년을 단지 ‘일베충’이라고 몰아세워도 되는 걸까요?

과거는 미래를 밝히는 등불
자신의 뿌리가 되는 한국
사를 놓고 선택으로 할 것이냐, 필수로 할 것이냐 하는 것조차도 부끄러운 논쟁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대로,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발 빠른 국민들은 국사 필수 과목 지정 서명운동을 이미 시작했고, 정부 한 편에서는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고 집중이수제 대상 과목에서 제외하자는 움직임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한국사가 교육과정 안에서 존재감을 찾고 대입을 위한 수능 필수 과목으로 채택된다고 해서 만사 능통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청소년이 미래를 이끌고 갈 낙관과 긍정의 안목을 기르고 자신의 등불에 심지를 굳힐 수 있도록 국사를 바로 아는 것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글 박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