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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

<셔틀콕>과 <한공주>, 그리고 독립영화에 거는 기대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영화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가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는 경쟁부문 본선 진출작을 발표했다. 역대 최다인 810편이 출품된 만큼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심사를 거친 결과 45편의 단편과 9편의 장편이 본선에 올랐다. 장편 9편 중 6편이 다큐멘터리, 3편이 극영화라는데 그중 극영화 두 작품의 이름이 눈에 익다.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2013)>과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2013)>가 그 주인공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독립영화 부문에서 사이좋게 2관왕에 오르며 한 차례 화제가 되었던 두 사람이 또 다시 서울독립영화제의 경쟁부문에서 만난 것이다.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일 테지만, 재능 있는 신인감독의 탄생을 남들보다 앞서 축하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두 편의 영화를 미리 기억해 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먼저,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은 소년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독특한 
로드무비다. 소년의 이복누나는 부모의 유산 일 억을 들고 달아났다. 소년은 이복동생과 함께 누나를 찾아 남해로 떠난다. 소년이 남해까지 가서 누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꼭 유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축제의 한 순간 누나를 찍은 스마트폰 영상으로 시작되는데, 관객들은 그 내밀한 느낌만으로도 누나에 대한 소년의 특별한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소년은 이제까지 유산을 탕진해가며 흥청망청 살아왔지만 통장 잔고는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혈연도 없이 남겨진 어린 동생의 존재가 버겁기만 하다. 영화는 그동안 성장을 유보해온 소년이 여행을 통해 현실에 직면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년기 특유의 무모함과 불안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고, 시간의 결을 촘촘히 매만지는 영화의 리듬도 인상적이다.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던 소녀가 전학을 
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소녀의 과거가 구체적으로 밝혀지는데,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리고 싶을 만큼 가슴 아픈 일이다. 소녀가 현실을 버티게 하는 것은 남몰래 부르는 노래, 또 어쩌면 마음을 열 수 있을 지도 모를 새 친구들이다. 사물을 매개로 불현듯 과거가 끼어드는 방식이나 소녀의 예민한 감정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CJ 무비꼴라쥬상은 2011년 <돼지의 왕>, 2012년 <지슬>에 이어 올해에는 이 영화에 돌아갔다. CJ의 배급지원으로 극장에서 조금 더 수월하게 <한공주>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또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셔틀콕>과 <한공주>는 얼마간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한편, 소년과 소녀의 서정이 다르듯 두 영화의 온도 차도 크다(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을 다룬 영화는 여성 감독 이유빈이, 소녀를 다룬 영화는 남성 감독 이수진이 만들었다). 두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들과 만날 지, 또 얼마나 세심한 비평적 조명을 받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두 영화 모두 만듦새를 잘 다듬은 만큼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낼 만한 요소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무엇보다, 이들 중 한편이라도 유의미한 영화적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들이 한국독립영화의 최선은 아닐지라도. 
식상한 성취보다는 흥미로운 실패를 응원하며, 두 감독의 건투를 빈다.


김다영|독학자. 부산독립영화협회 회원. 윌로 씨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