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주인 되는 거리
걷고 싶은 거리가 그리 흔하던가요. 도시의 주인은 사람일진대, 차량소통 원활히 한다고 인도를 줄이고, 길 중간에 떡하니 간판을 세우고, 심지어 주차도 해놓잖아요. 사람이 걷자고 만든 인도(人道)에서 사람이 오히려 객(客)이 되고 있는 거죠. 그리고 마치 미로처럼 언제고 걸어도 거기가 거기인 것 같은, 직사각형의 회색빌딩과 형형색색의 간판들뿐인 거리. 도시의 문화수준은 거리에서 나타난다는데…. 휴우 ~. 하지만 이 도시에도 시간 내어 걸어봄직한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압구정 신사중학교와 현대고등학교 샛길 맞은편에서 시작돼 신사동 J타워까지 이어지는 신사동 가로수길. 양 갈래로 쭉 들어선 은행나무, 눈요기하기 좋은 아기자기하고 이색적인 숍들, 예쁜 테라스가 있는 카페들이 발은 물론 마음까지 즐겁게 하죠. 삶의 다양성을 만끽할 수 있는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 같아요. 점심시간 간단히 요기하고, 짬을 내 산책하기에도 좋답니다.
아트선재센터와 정독도서관 교차로로부터 시작되는 북촌길은 켜켜이 쌓인 문화와 세월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그야말로 걷는 것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죠. 카페 간판, 한옥 대문, 문방구, 구멍가게, 세탁소…. 지나치는 하나하나 눈에 담고 싶은, 왠지 모르게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이에요.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를 차분히 걷고 나면, 세상사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것 같아요.
문화 향유의 거리 - 예술의 전당 앞 길
이 거리의 메인은 예술의 전당! 시원한 음악분수도 즐기고, 야외 파라솔에서 커피 한 잔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죠. 주말엔 무료야외공연도 볼 수 있고요. 예술의 전당의 높은 담 아래를 팔짱 끼고 걸어보는 것도 좋아요. 가족끼리, 친구끼리 소풍 삼아 가기 좋답니다. 참, 저녁에 가시면 색다른 분위기가 나요. 특별한 공연을 보지 않아도, 왠지 문화의 한복판에서 걸어 나온 충만한 느낌이 든답니다.
나란히 팔짱을 끼고 걸어도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는 넉넉한 거리 폭, 하이힐을 신어도 문제없는 폭신폭신한 우레탄 보도블록, 길가에 드문드문 핀 꽃과 우거진 나무, 혼자 걸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옛 추억들이 서려있는 거리. 이 도시 구석구석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정말 걷고 싶은 거리가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우리 올 가을에 함께 걸을까요? 가볍게 손잡고, 살랑살랑 마음을 만지는 가을바람을 맞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