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연재 종료

글씨에 감정을 불어넣다-타이포그래피(Typography)

에디터 정미희





얼마 전,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또 우길 때 다운로드 했던 폰트가 있다. 2005년 윤디자인연구소에서 탄생한 ‘독도체’. 우리 민족의 힘찬 기상과 부드러운 심성을 담을 수 있도록 강한 힘과 유려한 이미지를 나타내려 했다는 이 서체는 타이핑을 할 때마다 독도를 생각하게 했다. 사람의 성격, 쓸 때의 상황이나 감정까지 나타내는 글씨체는 이제 손글씨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자에 느낌을 불어넣는 디자인 작업인 ‘타이포그래피’ 덕분이다. 과거 활판인쇄를 뜻하던 ‘타이포그래피’는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키보드로 마음을 타이핑하다 

1인 1폰트 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업데이트 해둘 폰트가 연일 쏟아져 나오는 시대. 이제 ‘명조체’, ‘바탕체’ 등 딱딱한 폰트에만 자신의 생각을 가둬두지 말자. 아름다운 기업을 모토로 삼은 한 회사에서는 ‘가을체’로만 보고서를 작성한다. 폰트 하나 바꿨을 뿐인데, 딱딱하던 보고서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는 반응이라고. 생각들도 더 유연해져, 작업이 더 창조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미니 홈피, 블로그에서도 다양한 폰트가 개발되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경우, 폰트 한 개당 한 달 이용료 1000원으로 하루 판매량만 3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참!잘했어요’, ‘부끄부끄’, ‘솔 사랑한스푼’ 등 감정을 담은 글자들은 그 자체로 화려해 디자인한 효과가 나고, 자신의 기분까지 나타낼 수 있다.  


 

영화 포스터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손글씨, 이른바 ‘캘리그래피’도 ‘타이포그래피’ 중에 하나다. 글자만으로도 웃고 울고 화를 내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어, 한 장의 사진에 영화의 모든 걸 담아야 하는 영화 포스터에 많이 쓰인다. 출판계과 음반계에서도 타이틀에 많이 활용하고 있다. ‘캘리그래피’라는 용어가 도입된 것은 불과 10년 정도지만, 사실 뿌리 깊은 서예의 전통 속에 늘 존재했던 작업이다. 충무로 대필소를 찾아가 몇 만원만 지불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손글씨는 이제 작품 당 수백만 원에서부터 수천만 원에 이른다.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재료도 상상을 초월한다. 서예를 떠올리며 붓과 화선지, 먹 정도만을 예상하기 쉬운데, 대상의 특성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글씨를 쓸 수만 있다면 메이크업 브러시, 나무젓가락, 칡뿌리, 면봉 등을 가리지 않는다. 종이마다 번짐이 달라 아트지부터 박스종이까지 이것저것 시험해본다니, 느낌 있는 글씨를 만드는 과정은 참 멀고도 험하다. 



상품에 예술을 담다

포장 하나만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상품들도 ‘타이포그래피’의 확장영역이다. 가독성과 친근감 때문에 최근 식음료 제품에 많이 쓰이며 미각을 자극하는 감성마케팅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글 손붓글씨를 자신의 의상 디자인에 활용해온 디자이너 이상봉 씨는 최근 핸드폰과 다이어리, 도자기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타이포그래피 자체가 제품의 메인 디자인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 씨는 우편배달부처럼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주임무였던 활자가 디지털 혁명에 의해 스스로 내용에서 빠진 것을 표현하는 주체적 기능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디자이너가 이제 새로운 저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글자 하나에 담아내는 아름다움의 미학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감성을 추구하고, 사람의 체취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이기에….


'기타 > 연재 종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뚝배기계란탕  (0) 2009.07.06
고추장볶음  (2) 2009.07.02
리니의 자취요리 대작전 _ 묵은밥 활용 요리  (0) 2009.06.08
모탕의 노래 5 l 롤빵 세 개  (0) 2009.02.17
모탕의 노래 4 l 어떤 사랑이야기  (0) 200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