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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편집장의 편지

다문화, 행복한 공존을 꿈꾸다 | 편집장의 글

숭례문과 다문화사회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미식축구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와 함께 숭례문 화재 현장을 찾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문화의 상징, 숭례문이 타버린 곳에서 한국계 혼혈인이 커다란 두 눈으로 가슴 아프게 잿더미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의 장면은 마치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은유로 다가왔다. ‘우리’의 영역에 들어온 ‘그들’과 ‘새로운 우리’를 탄생시켜야 하는 거부할 수 없는 과제가 보였던 것.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요즘, 언론과 방송이 연일 ‘다문화사회’를 떠들어댔기 때문인지(지금 나 또한 그러고 있듯), 이미 다문화사회가 완성된 것 같은 허풍을 던져주지만, 사실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이라는 거대한 딱지를 떼어 내보고자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있는 정도이다. 진정한 다문화사회의 가치가 채 뿌리 내리기도 전에, ‘다문화사회’라는 용어만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이주민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부실한 채, 한국사회로의 일방적인 정착과 통합, 흡수를 유도하며, 다문화주의를 ‘한국화’로 착각하고 있다. 이는 다문화 주체인 이주민들을 오히려 소외시키고 구분 짓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번 3-4월호는 이런 흐름 속에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반성하고, ‘어떤’ 다문화사회를 이루어가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본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교회는 과연 어떠한 가르침과 행함으로 이들을 섬겨야 할 것인가 알아보고자 한다.
한 이주민 여성이 말했다. “한국에서 사랑받으려면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국적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늘 가까이에 존재했던 숭례문이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릴 때, 우리의 마음도 새까맣게 타버렸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뼈아프게 깨닫는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그 무엇에 비하랴.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적어도, 이 땅의 이주민에게 또한 ‘그들의 것’이 소중하다는 자긍심을 상실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다움’과 ‘다양함’이 서로 품위를 지키며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곳에 ‘다문화’가 있다.

노영신|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