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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역자의 세 가지 역할

지난 호가 나간 후 몇몇 매체들이 졸고에 관심을 가져주어 인터뷰를 몇 건 하게 되었다. 며칠 후, "민호기 목사, 음악사역자에 일침 가해", "민호기 목사,CCM계 문제 있다 강력 비판" 등 다소 강경하고도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보고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나는 음악사역자 사이에서 왕따가 되는구나, CCM계에선 끝이구나 하고. 그리고 며칠을 노심초사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지냈다. 행여 동료 사역자의 번호가 찍히면 가슴이 철렁.

문제는 여기부터다. 음악 사역자 동료 중 누구도 문제제기를 해오지 않았다. 이 현상엔 세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다. 하나는 내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하거나(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런 사안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좀 더 설득력이 있다), 이미 나는 왕따가 된 것이다(이거였군).  진짜 문제는 두 번째 경우라 여겨진다. 지지와 공감이 아니더라도 이견과 반론이 있어야 문제제기는 그 의미를 가진다. 문제제기로 그치지 않고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건 결국 문제의식들의 부대낌이라 믿는다. 한국의 음악사역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고민과 고민이 맞닿을 때 ‘문제’는 ‘답’이 된다.
음악사역이 빚어낸 문제의 근원에는 음악사역자 본인이 있다는 지적으로부터 오늘의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그리고 그 문제의 배후에는 언제나 교회의 ‘필요’가 있다는 것도 함께 짚어가고자 한다. 현재 한국교회가 음악(찬양)사역자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엔터테이너Entertainer, 워십리더Worship Leader, 메신저Messenger.

기존에 음악사역자에게 부여된 주요 역할은 각종 교회행사에 초청하여 소위 ‘분위기를 UP!’ 시키는 엔터테이너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예배와 예배음악에 관심이 집중되며 그로 인해 가장 중요해진 역할은 워십리더의 역할이다. 이원으로 분리해 생각할 것이 아니지만 엔터테이너로서의 음악사역자에 비해 워십리더의 무게감은 사뭇 다르다. 그러다보니 엔터테이너의 성향으로 사역을 해 오던 사역자가 워십리더의 역할을 요구받을 때 충분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워십리더를 ‘연기’하게 되더라는 문제가 생겼다(이건 사실 부끄럽지만 필자 본인의 경험이며 고백이기도 하다). 예배음악, 예배사역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시류에 편승해 앨범을 제작하거나 예배인도자를 자처하면서도 분명히 그들 내부에서는 문제의식이 소용돌이쳤으리라 여겨진다.
교회의 필요에 자신을 맞추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자신을 어떤 자리에, 어떤 역할로 부르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흔들리며 균형을 잡아가거나, 아니면 어느 한쪽을 분명하게 선택하는 지혜를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치를 두고, 또 필요성을 절감하는 역할은 메시지의 전달자로서의 음악사역이다. 그러나 음악사역자에게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크게 기대한 적이 없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제고, 또 메신저의 역할을 위해 충실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 음악사역자의 문제다.
음악을 대하는 한국인의 전반적인 정서는 ‘감상’보다 ‘실행’에 치우쳐 있다. 이 땅에서 공연장(Bar, Pub, Club 등도 포함하여)의 숫자와 노래방의 숫자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성도들 역시 들으며 은혜 받는 것보다 직접 부르며 은혜 받는다는 게 좋다는 거다. 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불충분한 입장임은 분명하다.

음악사역자의 음악과 노래만큼이나 그가 전하는 메시지와 그가 살아내는 삶을 읽어내는 건 오히려 음악사역자를 성숙하게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가 길어낸 생수와 같은 찬양이 성도들의 마른 삶을 적시게 될 것이다.

엔터테이너, 워십리더, 메신저.

이 세 가지의 역할에 모두 충실할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으나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에(실제로 한국 CCM에는 아직 그런 역할모델이 없는 듯하다) 음악사역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부르심에 가장 합당한 방향으로 훈련하고 사역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P.S


  1. 올 여름 각종 수련회와 캠프를 다니며 어느 순간 이 사실을 깨닫고는 소스라치도록 놀랐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 수련회를 갔다하면 지겹도록 듣고 강조 받은 것은 ‘복음’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제는 ‘예배’였다(심지어 필자 본인이 주관하는 행사조차 ‘예배 워크샵’이다). 복음이 실종된 자리에 예배가 주인이 되었다. 복음과 예배, 실상은 같은 것일지언정 현재와 같은 균형감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다음호에서는 이 부분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2. 글을 쓰면서 발견하게 되었고 이제라도 깨달아 다행인 것은, 결국 한국 음악사역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음악사역에 관련한 모든 문제들을 나 역시 숙제처럼 떠안고 있고, 그 한계상황으로부터 한 치도 자유롭지 못한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독자들의 기도가 필요한 지점이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