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그립다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그립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정답은 책 한 권 읽은 사람이란다.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은 좀 다르게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딱 한 나라만 여행해 본 사람이란다.

지난 달,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엘 나가게 되었다. 영국의 한인 청년 연합인 KOSTU의 초청으로 2주간 강의와 콘서트, 세미나 등을 겸한 일정이었는데, 다녀 온 후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앉혀 두고 영국 이야기를 해대니 견디다 못한 지인들은 나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사실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은 직업의 내가 서른 세 살에야 비로소 외국에 나가게 된 이유는 부끄럽지만 ‘비행 공포증’ 때문이었다. 왕복 40시간의 비행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지만, 특별한 부르심을 힘입어 다녀온 첫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점은 참 다행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접해 온 미국식 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고대와 중세와 현대가 조화로이 공존하는 문화 원류의 현장을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이번 호에서는 영국의 예배음악현장 경험에 비추어 우리의 음악 사역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가지고자 한다(또 영국 이야기냐며 지인들은 책장을 덮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일정의 주목적은
‘사역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했던 건 현지의 예배와 찬양 문화를 탐방하며 ‘배우는 것’이기도 했기에, 14일간 9회라는 적지 않은 사역 스케줄에도 다소 무리를 해 가며 여러 예배와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크게 3군데가 기억에 남는데 영국의 자생적 예배 스타일의 Holy Trinity Brompton Church,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호주 힐송의 프렌차이즈 London Hillsong Church, 흑인 특유의 열정이 넘치는 Brixton Ruach Church 등이다.

특히 Holy Trinity Brompton Church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에도 도입되고 있는 Alpha 프로그램을 만든 교회였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영국 교회가 속속 문을 닫고 하루에 하나 꼴로 교회가 술집이나 극장, 식당으로 변해가는(실제로 나이트 클럽 홍보물에 교회를 개조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적혀 있었고, 옥스퍼드에서 들렀던 교회를 개조한 식당의 천정에는 요란한 싸이키 조명과 예수님의 십자가 장면의 스태인드 글래스가 서글프게 마주보고 있었다.) 현실 속에서 부흥의 돌파구를 찾아낸 비결은 무엇일까.

그 곳에서 팀 휴즈(Tim Hughes)라는 세계적인 예배인도자(빛 되신 주, 예수 나의 첫 사랑 되시네 등의 작곡자)가 이끄는 예배팀이 주최한 개 교회를 위한 예배 컨퍼런스는 예배의 마인드와 실제적인 음악 워크샵을 겸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세계 어느 곳이든 성장하는 교회 안에서의 예배 인도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받게 되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팀 휴즈(Tim Hughes)가 우리 나이로 갓 서른의 젊은 사역자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물론, 4~50대의 장년들,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까지 참여하여 함께 예배하고 강의를 경청한다는 것이다.

평신도 사역자로 오랫동안 음악사역과 예배사역을 감당하며 성장해 온 젊은 사역자의 세미나에 목회자들이 겸허히 귀 기울이는 문화란 참 부러운 것이다. 교회의 성장을 위해 실력을 갖춘 예배인도자를 ‘모셔오기’에 급급한 한국 교회의 모습들에 비추어볼 때, 지역교회가 지속적으로 재능 있는 사역자를 지원하고 그의 성장을 도와 이윽고 교회의 중심적인 일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예배음악 전문 사역자로 키워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최근 한국교회의 예배 패러다임에 새로운 흐름이 생기며 찬양인도자가 예배 전체를 이끄는 형식의 예배가 많아졌다. 과거의 경우처럼 단회적으로 음악사역자를 초청해 특별 행사를 갖는 것보다 각 교회에 소속된 예배인도자를 통한 지속적인 사역이 더 중요해졌고, 때문에 영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전문 사역자에 대한 필요 역시 절실해졌다. 문제는 이런 전문가를 찾는 교회의 태도다. 실제로 교회 안에는 재능도 있고 열정도 넘치는 가능성 있는 예배인도자들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대부분이 음악 혹은 신학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정 수준 이상의 활동을 제한 받거나 정당한 평가를 유보 당한 채 전문사역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들 중 대다수는 더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고, 성장 여부를 신중하게 지켜봐야 하는 ‘가능성 있는 비 전문사역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는 가까이에 있는 좋은 사역자 대신, 자꾸만 멀리서 잘 한다는 누군가를 데려오려고만 한다. Holy Trinity Brompton Church는 사람에 투자하는 교회다. 알파 프로그램이든 예배 컨퍼런스든 사람을 세우는 일에 전력하는 교회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 다음 주에 들렀던 London Hillsong Church의 경우, 음향과 영상, 조명 등 전체 무대 시스템에 투여 된 비용이 350억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음에도 개인적으로는 단촐한 밴드구성에 조명하나 없었던, 팀 휴즈의 무대가 더 크게 느껴졌던 이유는 시스템보다 오히려 사람에 투자하는 교회의 태도 때문이다. 새로운 악기와 시스템의 구입과 교체에 재정을 아끼지 않는 교회가 교회 내의 가능성 있는 음악사역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도 머잖아 세계적인 예배인도자들을 배출하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지금이라도 교회는 훌륭한 자질과 가능성을 가진 평신도 예배인도자들을 ‘평신도’라는 이유로, 젊은 예배인도자들을 ‘젊다’는 이유로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놓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