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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우리의 음악이 없다.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병이 뭔지 아는가?

어이없게도 바로 ‘열등감’이란다. 나름 동네에선 수재고, 학교에선 전교 1등이었는데, 여기 와보니 다들 대단한 사람들만 모여 있더란 거다. 조금 다른 경우긴 하지만,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병 또한 ‘열등감’이다. 사실 이건 ‘문화 사대주의’라 불러야 옳을 만큼 심각하다. 가요나 CCM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훌륭한 작품이 나오면 버릇처럼 하는 말이 ‘팝송 같다’는 거다. 나름대로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뮤지션들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음악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나 역시 곡을 쓰고 좀 괜찮다 싶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팝송 같지 않냐?”

외국 음악에 길들여진 우리

우리가 공들여 만들어 낸 음악에 대한 최고의 평가가 ‘외국 노래랑 비슷하다’는 건 사실 힘 빠지는 일임에도, 오히려 그걸 대단한 영예로 여기는 우리는 도대체 뭔가? 특히 근래에는 흑인 음악을 주로 하는 음악가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고, 개중에는 꽤나 잘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미안하게도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와~ 진짜 흑인 같아요” 이상은 곤란하다.
사실 우리가 듣고 만들고 즐기는 대중음악은 영미권에 뿌리를 두고 있고 또 여전히 그 곳을 중심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겉모습은 한국인이면서도 교육을 비롯하여, 방송 미디어나 공연 전반에 걸쳐 국악과 양악의 비율이 거의 1:99의 격차인 작금의 현실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 음악을 너무 모르고 남의 음악에만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다. 그렇게 반세기를 넘게 영미 팝음악에 매진해 왔건만, 우리는 빌보드 순위에 제대로 한번 진입한 적도, 우리의 노래가 번역되어 외국 교회에서 불리는 일도 거의 없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유성(Originality)’의 문제다.

예배음악, 대다수가 외국 것
미국의 CCM 레코드사에서 신인 가수를 찾는 4요소가 있다 한다. ‘Song, Singing, Performance Skill, Originality’가 그것이다. 즉 좋은 가사와 곡, 가창력, 무대에서의 표현력. 그리고 ‘고유성’이다. 자신만의 색깔, 독창성, 차별성을 중요하게 본다는 거다.
한국에 이런 고유성을 가진 아티스트나 음반이 흔치 않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요즘의 대세인 워십 분야는 더더욱 심각하다. 가령 외국의 예배사역자가 한국의 예배음악을 알 수 있는 워십팀과 그들의 노래를 소개해 달라 요청해 왔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몇몇 팀을 추천한다면, 아마 그들은 팀 이름에서부터 고개를 갸웃거릴 거다. 그리고 음악을 듣고 난 후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아니요. 이건 우리의 것이고, 당신들의 것이 뭐냐는 거요."

고유한 우리 예배 음악이 필요하다
요즈음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음악사역자, 예배인도자들이 전 세대와 조금 다른 점은 이들이 찬양사역의 꿈을 키우던 시절 외국 CCM 음반과 뮤직 비디오, 공연 실황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아마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일 게다. 이 점은 음악가로서의 바탕을 넓히는 중요한 자양분이 되지만, 동시에 한계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대다수의 예배사역자들은 마치 ‘호산나 인테그리티’나 ‘힐송’에 대해 일종의 ‘로망’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1980년대 후반 경배와 찬양 운동이 본격화 된 이후 한국의 예배 음악은 20년에 이르고 있다. 예배음악이 음악 사역, 음반 산업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도 10년 세월이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의 예배음악, 예배사역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힐송’ ‘패션’ ‘호산나’ ‘소울 서바이버’ ‘빈야드’ ‘마라나타’ 등의 ‘프랜차이즈’에 불과하다. 우리의 ‘고유성’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의 손가락 끝은 결국 다시 내게로 돌아와 나를 겨눈다. 어렵고도 무거운 숙제다.

p.s.

  1. 다음 호에선 외국 워십 음악이 주가 된 현 상태에, 한국적 예배음악의 한계 상황과 가능성에 대해 좀 더 깊이, 구체적으로 다뤄볼 생각이다.
  2.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구의 ‘찬미’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고, 이번에 두 번째 워십 음반이 발표되었다. 여전히 고민과 시도가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해 위의 글에서 지적한 대부분의 문제를 제대로 극복해내지 못한 채 덜컥 음반이 나와 버려 부끄럽고도 두렵다. 언제나 이론과 실제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들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쓴 질책도 달게 받을 테니….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